‘천혜의 지형과 수목으로 덮여 있는 작약도가 지금은 정태수(鄭泰守)의 개인 소유이며, 그 경관과 피서지로서 경향각지에서 관광객이 수없이 찾아들고 있다.’
인천 향토사학자 이훈익 선생이 1993년 펴낸 ‘인천지명고’에 인천의 주요 관광지 12곳 중 다섯 번째로 소개된 물치도(작약도)의 설명 중 일부다. 월미도 서북방, 영종도 동북방의 작은 섬, 물치도(勿淄島)는 무치도(舞雉島)라고도 불렸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작약도(芍藥島)라고 고쳐 부르기도 했다. 인천 앞바다를 거쳐 한강을 오르기 위해서는 물치도를 지나야 했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나 미국의 군함들도 이 물치도를 기착지로 삼았다.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의 이름을 따서 ‘보아제 섬’이라 하기도 했고, 신미양요 때는 숲이 울창하다 하여 미군들이 ‘우디아일랜드’라 칭했다.
물치도는 이름이 많았던 것처럼 주인도 여럿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스즈끼라는 일본인 소유였다가 해방 직후 몇몇 개인 섬으로 넘어 갔다가 ‘인천지명고’의 설명처럼 1976년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차지했다. 1996년 인천 해운업체 원광이 인수했다가 2005년에 진성토건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2020년 부동산 경매 중개 전문기업이 법원 경매를 통해 94억원에 낙찰받았다. 법원 경매 이전까지 물치도 소유자는 누구 하나 잘 된 경우가 없었다.
전국적인 명성의 관광지 물치도는 한때 인천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인기를 끌었다. 한하운(1919~1975) 시인이 인천여고 학생들과 함께 소풍을 갔다가 쓴 ‘작약도’라는 작품도 있다. ‘인천여고 문예반과’라는 부제를 단 이 시를 보면, 물치도에 소풍을 가서 점심까지 지어 먹었던 듯하다.
정태수 신화가 무너져 내린 한보그룹 사태 때까지 꼭 20년을 정태수 회장 개인 소유였던 물치도는 어찌 됐든 한보와 정태수라는 이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며칠 전 법원이 서울 은마아파트 단지 내 토지 795㎡(240평)에 대해 서울시가 정태수 회장 상속인들에게 소유권을 이전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물치도를 사들였던 한보 정 회장은 1979년 은마아파트를 건설해 분양하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한보는 우리 IMF 사태의 도화선이기도 했다. 오는 16일에 인천지법에서는 물치도 소유권을 결정지을 경매가 예정돼 있다. 그 주인이 누가 될지 궁금하다.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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