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뚫렸다. 거대 자산이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이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바이낸스 보안팀은 이상 징후를 감지했다. 10억 달러 인출로 시작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임직원들은 속수무책, 블록체인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광경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피해 규모도 규모지만 속도가 더 섬뜩하다.
바이낸스가 털린 돈은 6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조4천억원이다. 비트코인만 1만8천270개, 2조원에 달한다. 미국 테슬라의 비트코인 보유량 1만1천509개를 훌쩍 넘어서고, 북한의 한 해 수출액보다 세 배 많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북한 해킹조직 ‘트레이더트레이터’를 배후로 지목했다. 올해 들어 전 세계 가상자산 해킹 피해액의 85%가 북한 소행이라는 집계가 나올 만큼, 이미 전 지구적 위협이 되었다.
바이낸스 개발·운영 엔지니어의 노트북이 해킹 경로로 드러났다. 해커들은 큰돈을 옮기기 전에 소액부터 보내 지갑이 열리는지 확인했다. 탈취 직후 동결이 어려운 이더리움으로 갈아타는 데 매달렸다. 3억2천500만 달러어치를 바꾸면서 시세보다 비싼 값을 치렀다고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달아나는 길이 먼저였다는 뜻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계좌 동결로 막을 수 있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그렇지 않다. 바이낸스 쪽이 묶어 둔 돈은 약 30억 달러로, 절반에 못 미친다. 나머지는 쪼개지고 섞이며 흘러간다. 모든 거래 기록이 분산 기록돼 추적이 투명하다는 블록체인의 신화는 역설적으로 해커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제재로 고립된 북한이 제재의 장벽 바깥에서 거액을 손에 쥐었다. 이 돈을 어디에 쓸지도 걱정이다. 가상자산 탈취가 핵·미사일 개발의 돈줄이라는 의혹은 국제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바이낸스 측이 발 빠르게 피해액의 일부를 틀어막고 출금 시스템을 정상화하겠다고 나섰으나, 시장이 느끼는 공포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지난 9월 말부터 국내 금융사 7곳에서도 개인정보 6만8천건이 유출됐다. 인간 해커가 수작업으로 찾던 시스템의 허점을 이제 AI(인공지능)가 스스로 찾아내는 시대다. 20분 만에 증발한 8조원은 더 거대하고 정교해질 사이버 공격의 전조일 뿐이다. 국경 없는 금융거래의 안보는 기업의 방어선을 넘어 인류의 혼란을 막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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