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는 일찍이 수백만 명의 학살을 방조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목격하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경고했다. 그가 괴물이어서 악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상부의 명령을 비판 없이 수용했던 ‘생각 없음(Thoughtlessness)’이 비극의 원인이었다는 지적이다. 아렌트가 제안한 해법은 명확하다. 일상의 맹목적인 달음질을 잠시 멈추고 질문을 던지는 것, 즉 ‘스톱 앤 씽크(Stop and Think)’이다. 이 경고는 최진석 교수가 외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과 공명한다. 최 교수는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이나 과거의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단계를 ‘수입된 사유’라 부르며 비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복제하는 노예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질문을 우뚝 세우는 주체성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적 성찰과 최진석이 강조하는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남들의 시선이나 관습’이라는 마음의 벽을 깨부수고 나올 용기를 얻게 된다.
관습의 틀을 부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참된 정신의 삶이란 무엇일까? 아렌트는 이를 ‘둘이서 하나 되기(2-in-1)’라고 불렀다.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 속에서 ‘질문하는 나’와 ‘답하는 나’가 끊임없이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다. 이 내면의 대화가 살아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도덕적 정체성과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나침반을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사유의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혼자 남겨지는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끊임없이 스마트폰 화면 속 소음에 이끌려 도피처를 찾아 유랑하므로 내면의 진정한 동반자를 외면한다. 철학하는 존재로서의 탁월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이 인위적인 소음에서 걸어 나와 고독을 자처해야 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신적 활동이야말로, 세상이 주는 가짜 안정감에 자신을 묻지 않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체적 사유의 여정은 단순히 지적인 훈련이나 철학적 유희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인간적인 사유가 마주하는 한계와 실존적인 불안 앞에서, 우리는 한 단계 더 깊은 차원으로 도약해야 한다. 여기서 바로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Den Enkelte)’라는 궁극의 결단이 요청된다. “인간은 대중이라는 익명의 장막 뒤에 숨을 때 타락하며, 오직 신 앞에 단독자로 홀로 설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 키에르케고르는 교회가 만들어 놓은 안이한 제도적 신앙과 군중 속에 묻어가는 가짜 신앙을 맹렬히 비판했다. 진정한 종교적 삶이란, 세상의 모든 평판과 기준을 내려놓고 오직 신과 나 사이에 단독자로서 대면하는 고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한 내면의 대화 상대를 궁극의 존재인 ‘신’으로 확장할 때, 현대인의 만성적 외로움은 파괴적인 질병이 아니라 창조적인 ‘신앙적 실존’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신 앞에 고독하게 선 단독자로서 내면의 대화를 심화할 때, 비로소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 가장 높은 차원의 사유적 시선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관습을 깨뜨리고,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며, 신 앞에 고독한 단독자로 선 인간만이, 나는 물론, 타자 역시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성서와 신학은 신자가 경험할 수 있는 이 궁극의 지점을 가리켜 ‘거룩’ 또는 신학적 사유와 실천으로서 ‘온전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유와 영성이 메마르면 우리는 배우자나 자녀, 혹은 사회 구성원들을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사회적 기준의 틀로 재단하고 소유하려 든다. 이 사유의 빈곤이 가정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그러나 신 앞에 선 단독자는 내 곁의 타인을 나와 마찬가지로 신 앞에 선 고유하고 거룩한 세계로 바라본다. 나 중심의 이기주의를 넘어, 타자의 처지가 되어 바라보는 ‘확장된 사유’가 비로소 사랑이라는 실천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 영성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이자, 메마른 사회를 향한 진정한 공헌의 가능성이다.
풍요 속의 빈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여, 이제 대중 또는 인공지능 미디어가 제공하는 안락한 품에서 걸어 나와 고독한 사유의 광장으로, 그리고 신 앞의 단독자라는 예배처로 나아가자. 이제 잠시 일상을 멈추고 생각하라. 그리고 결단하라. 신 앞에 단독자로 우뚝 서는 그 외롭고도 고결한 투쟁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치와 깊이를 회복하고 타자를 온전히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탁월한 정신의 삶이다.
차종관 세움교회 목사, 전 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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