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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집단의 기록에서 4천723명의 이름을 되찾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은 학생독립운동 제97주년을 맞아 22일 오후 2시 기념회관 학생의회실에서 ‘학생독립운동, 새로운 발굴과 사적지 승격의 과제’를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개최한다.

집단의 기록에서 4천723명의 이름을 되찾다

학생독립운동 참가자 전수조사

박해현 교수, 오늘 성과 발표

학생독립운동기념관서 학술발표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은 학생독립운동 제97주년을 맞아 22일 오후 2시 기념회관 학생의회실에서 ‘학생독립운동, 새로운 발굴과 사적지 승격의 과제’를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개최한다.

이날 초당대학교 박해현 교수는 ‘학생독립운동 참가자 발굴 성과와 향후 보훈의 과제’를, 한양대학교 김지홍 교수는 ‘학생독립운동 발상지 사적 지정 추진 전략’을 발표한다.

박 교수의 발표에서 가장 주목되는 성과는 그동안 ‘전교생’, ‘수백 명’, ‘학생 일동’으로만 기록됐던 참가자들을 구체적인 이름과 행적으로 복원한 점이다. 박 교수 연구팀은 2025년 광주·전남·전북·서울 지역 69개 학교를 전수조사해 학생독립운동 참가자 4천723명을 확인했다.

기존 명단을 단순히 합산한 것이 아니라 당시 신문과 판결문, 경찰·검찰 기록, 공훈록, 학적부·제적부·졸업대장 등을 대조해 참가자의 신원과 활동을 확인했다. 서로 다른 자료를 결합해 집단의 숫자를 개인의 이름과 행적으로 바꾼 것이다.

서울 중동학교의 경우 당시 자료에는 약 1천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학생들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신문의 체포·구류·석방 명단과 학교 자료,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문서를 종합해 참가자 356명의 이름을 복원했다.

황의태 등 개인별 공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는 학생들이 여러 차례 회합하고 검거 학생 석방 요구와 공동 맹휴를 협의한 사실도 확인됐다. 학생들은 학교 간 연락과 학생 동원, 적기 제작 등 시위 준비를 분담했다. 한 학생의 행적을 추적하는 작업이 당시 학생운동의 조직과 전개 과정을 복원하는 연구로 확장된 것이다.

전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판결문과 학적자료 등을 통해 참가자 48명을 확인했다. 특히 학생 개개인의 활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학생들의 항쟁이 비밀결사 적광회와 연계돼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여학생의 역할을 복원하는 동시에 거리 시위의 배후에 비밀결사와 조직적인 준비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2026년에는 조사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동래고보에서는 신문·공훈록·제적부 등을 통해 현재까지 168명을 확인했다. 졸업대장 조사가 완료되면 추가 참가자의 이름과 학년도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제2상업학교에서는 당시 2학년 학생 약 80명이 맹휴에 참여했지만 현재 공훈록과 신문에서 실명이 확인된 학생은 13명이다. 연구팀은 제적부와 졸업대장을 추가로 조사해 집단의 숫자로만 남은 학생들의 이름을 찾을 계획이다.

조사 성과는 포상신청으로 이어졌다.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은 박 교수 연구팀이 작성한 미서훈 참가자 100명의 포상신청서를 지난 8월 15일 국가보훈부에 제출했다. 대상자는 서울 시내 학교 남학생 66명과 여학생 34명이다. 전수조사가 이름을 찾아내는 역사 연구라면, 포상신청은 그 이름을 국가적 예우와 연결하는 보훈의 실천이다.

연구 범위는 국외로도 확장됐다. 연변에서는 동흥·대성·은진·명신여중·광명여중 등 민족학교 학생들이 1930년 1월 23일 시위에 나선 뒤 학생 검거, 석방 요구, 후속 시위로 항쟁을 이어간 과정이 확인됐다. 여러 민족학교가 연결된 연속적인 항일운동이었다.

미주 현지조사에서는 미국인 선교사 빅터 웰링턴 피터스가 부모에게 보낸 편지가 발굴됐다. 피터스는 1929년 12월 15일 편지에서 한국 학생들의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It spread like wild-fire)”고 기록했다. 이 편지는 총독부의 보도 통제를 넘어 광주의 소식이 서울의 선교사 사회와 개인 서신망을 거쳐 미국으로 전달된 경로를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들리 시립묘지에서는 영암 출신 독립운동가 김사옥의 묘소도 확인했다. 묘비에는 ‘대한인 김사옥(大韓人 金士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국내 문헌에서 확인한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미주의 묘소와 연결함으로써 현지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기반을 구체적인 인물과 공간을 통해 복원한 성과다.

지정토론을 맡은 장석흥 국민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번 연구가 흩어진 사실들을 모아 역사적 사실로 엮어냈으며, 학생독립운동사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특히 운동의 규모만 알려졌을 뿐 이름이 지워졌던 학생들을 역사의 주체로 복원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전수조사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학생독립운동사와 참가자 인명사전을 편찬하고, 국내외 관련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 확인한 참가자와 발굴자료를 학생독립운동 전시실과 추모관에 반영하고, 미서훈 참가자의 포상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정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장은 “이번 학술발표회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학생독립운동 참가자들의 이름과 행적을 되살리고, 학생독립운동 발상지의 국가사적 승격을 위한 학술적 근거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라며 “새로운 발굴 성과가 포상과 전시, 교육과 기억 계승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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