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필수품 된 손풍기···소형가전 경쟁 점화
손·목·허리로 세분화, 착용형 제품 경쟁 본격
다이슨 참전, 14만원대 ‘프리미엄’ 시장 개막
이른 더위에 야구장에서 손선풍미 침 휴대용 선풍기를 사용하고 있는 관중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올여름 더위는 예고편부터 강했다. 4월부터 낮 기온이 25도를 넘나들더니, 5월 중순에는 전국 곳곳이 30도 안팎까지 달아올랐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도 전인데, 사람들은 벌써 바람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어컨 리모컨을 먼저 찾는 집 안 풍경만 달라진 게 아니다. 밖으로 나가는 가방 속에도 작은 선풍기 하나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기상청은 올해 4·5월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60%로 전망했다. 이른 더위는 냉방 가전 시장의 시계도 앞당겼다. 에어컨과 대형 선풍기 판매가 빨라졌고, 휴대·탁상용 선풍기 수요도 함께 뛰었다. 전기료 부담에 선풍기를 찾는 소비가 늘어난 데다, 야외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들고 다니는 바람’에 대한 수요가 커진 영향이다.
가장 먼저 달라진 풍경은 야구장에서 보인다. 관중석에 들어서면 이제 유니폼 색깔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이 손선풍기다. 한 손에는 응원 배트, 다른 한 손에는 손풍기. 목에는 넥 선풍기를 걸고, 테이블 석에는 작은 무선 선풍기를 세워둔다. 안타가 터지기 전부터 관중석에는 이미 바람이 먼저 돈다. 응원가가 울리면 사람들은 배트를 흔들고, 선풍기는 묵묵히 얼굴 앞으로 바람을 보낸다.
야구장은 휴대용 선풍기의 존재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무대다. 낮 경기에는 햇볕이 정면으로 쏟아지고, 저녁 경기에도 수만명의 열기와 응원 소리가 체감온도를 끌어올린다. 경기는 보통 3시간 안팎 이어진다. 예전 같으면 부채와 얼음물, 젖은 수건으로 버텼을 자리다. 이제는 다르다. 팬들은 각자 자기 몸 가까이에 작은 냉방 장치를 붙인다. 여름 직관의 준비물 목록에 선풍기가 당당히 들어온 셈이다.
구단들도 이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SSG 랜더스는 인기 캐릭터 ‘가나디’ 협업 상품에 넥 선풍기와 캔쿨러를 넣었고, 두산 베어스는 크레모아와 손잡고 구단 색을 입힌 휴대용 선풍기 ‘클립팬 미니’ 에디션을 선보였다. 응원 배트와 유니폼, 머리띠가 중심이던 야구장 굿즈 시장에 냉방 소형가전이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이다. 선풍기는 더 이상 더위를 견디기 위한 민망한 생존템이 아니다. 팀 컬러와 캐릭터가 붙는 순간, 선풍기도 응원룩의 일부가 된다.
재미있는 건 이 장면이 단지 야구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풍기는 집 안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다. 과거 선풍기는 거실 한쪽이나 침대 옆에 놓고 쓰는 계절가전이었다. 콘센트 가까이에 두고, 전선이 허락하는 만큼만 움직였다. 지금은 손에 들고, 목에 걸고, 허리에 차고, 좌석에 집어쓴다. 바람을 기다리는 시대에서 바람을 데리고 다니는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제품 형태도 그만큼 다양해졌다. 손에 드는 핸디형은 기본이고, 목에 거는 넥밴드형, 허리에 고정하는 웨어러블형, 책상이나 좌석에 집는 클립형, 캠핑장과 사무실을 오가는 무선 탁상형까지 나왔다. 야구장에서 두 손을 비우고 응원하려면 넥 선풍기가 편하고, 테이블 석에 앉아 오래 머물려면 무선 선풍기가 낫다. 아이와 함께라면 클립형 제품을 유모차나 좌석에 고정할 수 있다. 선풍기도 이제 상황에 맞춰 고르는 물건이 됐다.
한때 휴대용 선풍기는 ‘작고 싼 여름 소품’에 가까웠다. 지하철역 앞이나 편의점 계산대 옆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한철 쓰고 넣어두는 제품이라는 인식도 강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은 달라졌다. 몇천원대 저가 제품부터 10만원대 프리미엄 제품까지 가격대가 넓어졌다. 바람이 나오느냐만 따지는 게 아니라, 얼마나 세고 조용한지, 배터리는 얼마나 오래가는지, 들고 다니기 편한지, 머리카락 끼임은 없는지까지 따지는 소형 가전이 됐다.
가전업계가 휴대용 선풍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바닥만 한 제품에도 BLDC 모터, 고속 풍속, 냉각 패널, 펠티어 냉각 패드, 대용량 배터리 같은 기술 용어가 붙는다. 과거 대형 선풍기나 에어컨에서 강조되던 성능 경쟁이 작은 제품 안으로 들어왔다. 작아졌지만, 가전으로서의 눈높이는 오히려 높아졌다.
다이슨은 첫 휴대용 선풍기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 [사진=다이슨]
프리미엄 브랜드의 참전은 시장 분위기를 상징한다. 다이슨은 첫 휴대용 선풍기 ‘다이슨 허쉬젯 미니 쿨’을 국내에 내놨다. 212g의 가벼운 무게에 브러시리스 모터와 고속 바람을 앞세운 제품이다. 가격은 14만9000원이다. 손풍기 하나에도 디자인과 기술, 브랜드 경험을 따지는 소비가 붙기 시작한 셈이다.
반대편에서는 국내 소형 가전 업체들이 실용성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루메나는 냉각 패널과 고풍속 설계를 앞세운 신제품을 선보였고, 무아스는 펠티어 냉각 패드와 넥 스트랩을 적용한 핸디팬으로 이동성을 강조했다. 쿡테크는 초경량·고풍속 제품으로 아웃도어 수요를 겨냥했고, 쿨랩은 허리 고정형·탁상형·목걸이형 등 여러 방식으로 쓸 수 있는 허리선풍기를 내세웠다.
휴대용 선풍기의 경쟁 포인트는 결국 ‘어디에 바람을 붙일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손에 들 것인지, 목에 걸 것인지, 허리에 찰 것인지, 좌석에 고정할 것인지에 따라 제품이 갈린다. 야구장 관중석에서 선풍기를 고르는 일도 단순히 바람 세기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두 손을 비우고 응원할 수 있는지, 경기 끝까지 배터리가 버티는지, 가방에 넣기 편한지까지 사용 장면이 구매 기준이 된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용 선풍기는 과거 저가형 계절 소품에 가까웠지만, 최근에는 사용 장소와 방식이 세분되면서 하나의 소형 냉방 가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야구장이나 캠핑장처럼 장시간 야외에 머무는 환경이 늘면서 가볍고 오래가며 몸 가까이에 둘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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