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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희대의 오독

조각은 삼차원 예술이다. 벤베누토 첼리니 같은 조각가는 조각이 회화보다 여덟 배는 위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회화는 한 방향에서만 볼 수 있지만 조각은 여덟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물론 농담이 섞여 있다.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희대의 오독

조각은 삼차원 예술이다. 벤베누토 첼리니 같은 조각가는 조각이 회화보다 여덟 배는 위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회화는 한 방향에서만 볼 수 있지만 조각은 여덟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물론 농담이 섞여 있다.

모든 조각은 기념비적이다. 기념비적이란 인간이 무엇인가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의미다. 구석기시대 인체 조각부터 최근의 동상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

그래서 그런 목적을 가진 조각은 단단하고 오래가는 돌이나 청동을 쓴다. 요즘에는 플라스틱과 부드러운 가죽이나 헝겊도 쓰인다. 부드러운 재료를 이용한 조각들은 대개 조각의 권위적이고 기념비적 성격을 비판하며 일상적 사물의 물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쓰였다.

조각은 회화와 감상하는 방법이 같지 않다. 공간의 구성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조각을 볼 때는 공간을 본다. 조각의 공간은 조각이 차지하고 있는 실제 공간인 실공간과 실물은 아니지만 시각을 지배하는 허공간이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법원 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 조각을 보자.

이 조각은 통상적인 ‘정의의 여신’ 조각과는 다르게 눈을 뜨고 있다. 칼 대신 책을 왼손에 쥐고 있으며 의자에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무궁화 화관을 쓰고 있다.

이 여신이 들고 있는 천칭과 몸통 사이가 바로 허공간이다. 이 공간은 실제로 조각이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공간이다.

그 공간을 뭔가 다른 것으로 채웠다고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밖에도 동세나 질감, 비례, 심미성 등이 감상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조각의 경우에는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대법원이 가지는 상징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진 선언적 기념비이자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이 조각을 눈을 뜬 채 <경국대전> 비슷한 전통 서책을 들고 무궁화꽃 장식이 많은 의자에 앉은 선녀 모습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당시의 고위 법관들이었을 것이다.

애초 의도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며, 오랜 전통의 법전에 따라 공평무사한 재판을 하겠다는 걸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눈을 뜬 것은 권력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이고, 서책은 법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겠다는 의도이며, 수평을 이룬 저울은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석이 크게 틀린 것 같지도 않다.

최근 대법원장이라는 이는 틈만 나면 사법부의 독립과 헌법적 가치, 공정과 무사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계엄 당시 행태와 밥값을 둘러싼 논란과 변명, 서류 조작 의혹 등을 보면 그 말에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자기 정치를 하기 위한 빈말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혹시 그는 정의의 여신 조각을 보며 조형적으로도 부조화스러운 무궁화 좌대가 임기 끝날 때까지는 제 것이라도 되는 양 고의로 오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야말로 희대의 큰 오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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