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공개세미나'에 참석한 각 분야 전문가들.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중복상장에 대해 ‘원칙 금지, 예외 허용’ 기조를 도입하고 이르면 7월부터 강화된 심사에 나선다. 모회사 기존 주주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절차도 명문화된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16일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세미나'를 열고 구체적인 심사 기준과 적용 범위를 공개했다. 지난달 금융위가 발표한 '중복상장 원칙 금지' 방침의 후속 조치다.
이르면 7월 시행을 목표로 상반기 내 개정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중복상장 원칙금지는 새로 도입된 주주 충실의무가 상장제도에 적용되는 것으로 자본시장 체질개선을 위한 중요 과제"라고 말했다.
◆ '경제적 동일체'까지 포함…중복상장 범위 확대
금융당국은 중복상장 판단 범위를 확대한다. 단순한 모·자회사 관계를 넘어 '경제적 동일체'로 인식되는 종속회사까지 심사 대상에 포함한다.
연결재무제표상 종속회사이거나 동일 기업집단 내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계열사가 해당된다. 물적·인적 분할 자회사뿐 아니라 설립 또는 인수한 자회사 상장도 모두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예비 심사 기준과 상장세칙에 ‘중복상장 특례’를 신설해 적용 대상과 기준을 명문화할 방침이다.
심사는 영업 독립성, 경영 독립성, 투자자 보호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이 제한된다. 자회사의 영업이 모회사에 의존하지 않는지, 의사결정 구조가 독립적인지 등을 살핀다.
특히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모회사 일반주주의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가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 모회사는 중복상장이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공시해야 한다.
이억원 위원장은 "정부는 중복상장에 대해 엄정하고 합리적인 심사기준을 도입해 원칙 금지·예외 허용 기조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 주주에 공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상장인지, 상장의 이익이 소수에 집중되는 비대칭적 상장인지를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말했다.
또 "심사 강화에 더해 제도적으로도 모회사 이사회가 자신의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충실 의무를 다하도록 개선하겠다"며 "모회사 이사회가 중복상장이 주주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주주 보호방안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소통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모·자 회사 기업가치 이중 계산
중복상장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되는 구조로 기업 가치가 이중 계산되는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시가총액 2조 원인 A사가 지분 80%를 보유한 자회사 B를 1조 원 가치로 상장하면 합산 시총은 3조 원이 되지만, A사 시총에는 이미 B 지분가치가 반영돼 있어 해당 금액만큼 가치가 부풀려진다.
중복상장은 지배주주가 추가 출자 없이 자회사 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배주주는 지배력을 유지한 채 기업집단을 확장하는 반면, 모회사 일반 주주는 지분 가치 희석을 겪는 구조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특히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LG화학 주주들은 핵심 사업부 분할 상장 이후 주가 급락을 경험했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연쇄 상장 역시 투자자들의 불만을 야기한 사례다.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약 18%로 미국 0.35%, 일본 4%보다 높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집단은 92개, 계열사는 3301개이며 상장사는 361개다. 삼성 16개, SK 21개, 현대차 12개 등 주요 그룹은 다수 상장사를 보유한다.
지주회사와 자회사 동시 상장 구조로 계열사 간 출자 관계가 얽혀 가치 중복과 주주 가치 희석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 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의 코스피 상장을 추진했던 LS그룹은 올해 1월 말 이같은 계획을 전격 철회를 결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복상장' 폐해를 지적한 직후다.
이날 이 위원장은 "지배주주가실질적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사업부문과 계열사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중복상장을 이용해왔다는 지적이 있다"며 "일반주주는 자회사 성장의 성과를 공정하게 향유하지 못하고 주가 디스카운트를 감수했다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이런 문제를 덮지 않고, 일반주주와 지배주주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는 비판을 불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도 언급했다.
이 위원장은 "애플, 메타 등 거대 기업이 자회사를 별도 상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금지하는 법적 제한이 있어서가 아니다"라며 "중복상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액주주와의 이해 상충, 그로 인해 이사들이 짊어지는 법적 책임을 사전 인식해 스스로 자제하는 관행이 확립돼 있다"고 말했다.
◆ "주주가치 훼손 구조" vs "규제 부작용 우려"
다만 시장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중복상장은 일반 주주의 이익을 구조적으로 희생시키는 메커니즘"이라며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반드시 모회사 일반 주주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규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모회사 일반주주한테 자회사의 배당이나 현금흐름이 온전히 배달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먼저설계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며 "상장 시점에 일반주주의 동의를 받는다고 해서 주주가치가 보호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상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자회사 상장까지 막으면 IPO와 이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벤처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며 "일괄적이고 원칙적인 규제보다 예외와 유예의 방법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중복상장 해소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규 금지뿐 아니라 기존 중복상장 해소를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이번 세미나에서 수렴한 의견을 반영해 이달 중 규정안을 마련하고 개정 예고에 나설 예정이다. 이후 상반기 내 절차를 마무리하고 7월부터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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