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환율 급등과 증시 급락,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기름값 인상, 원자재 가격 급등까지 겹치며 ‘복합 위기’ 양상이 짙어지고 있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28원을 넘어서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이틀 연속 1520원을 웃도는 흐름 속에 1530원선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중동 전쟁 장기화와 미국의 대이란 군사 대응 가능성이 부각하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고 달러 강세가 이어진 영향이다.
국내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는 장중 5100선 아래로 밀리며 4% 안팎 급락했고 외국인 투자자가 1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하락을 주도했다.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주요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일제히 하락했다. 코스닥 역시 3%대 낙폭을 보이며 동반 약세를 나타냈다.
국제유가도 급등세를 보였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돌파하며 3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브렌트유 역시 11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후티 반군의 공격과 이란의 군사 행동, 미국의 대응 가능성이 겹치며 공급 불안이 확대된 결과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고 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90원까지 상승하며 1900원 재돌파를 눈앞에 뒀고 서울은 이미 1940원을 넘어섰다. 경유 가격도 1880원대를 기록하며 동반 상승했다.
실물경제 충격도 본격화되고 있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비닐과 플라스틱 등 포장재 가격이 30~50% 가까이 오르며 소상공인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일부 업종에서는 포장비를 별도로 부과하거나 공급 부족으로 ‘품절’ 사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4월이 더 큰 고비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 정부는 원유 수급 불안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부터 ‘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를 도입해 정유사에 비축유를 선제적으로 빌려주고, 대체 원유 확보 시 상환받는 방식으로 공급 차질을 완화하기로 했다. 4~5월 두 달간 약 2000만 배럴 규모가 활용될 예정이며 필요시 연장도 검토할 예정이다.
정부는 현재로서는 6월까지 국내 원유 수급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쟁 장기화 여부와 대체 물량 확보 상황에 따라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석유화학 제품 매점매석 금지 등 추가 대응책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금융 변동성을 넘어 원자재 공급 충격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위험자산 회피가 지속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상황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옥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