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 건축 공사 현장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김예온 기자]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핵심 권리인 '작업중지권'이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최근 대형 건설사들이 전사적인 지원과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며 실질적인 재해 예방 수단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다만,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형사와 달리,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견 및 소규모 건설사들은 여전히 제도 활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안전 확보를 위한 비용 보전과 권리 남용 방지 등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안전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형 건설사들은 관리자와 근로자가 현장의 위험 요소를 발견할 경우 즉각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행사를 적극 독려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2021년부터 작업중지권을 현장에 전면 도입했으며, 2025년 6월 기준 행사 건수가 누적 58만건을 돌파했다. 삼성물산은 전용 애플리케이션인 'S-TBM'을 개발해 근로자가 신속하고 편리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했다. 특히 작업중지권의 적극적인 사용을 위해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는 근로자에게 포상하고, 협력업체 손실을 보상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실제 휴업 재해율이 작업중지권 보장 활성화 이전 대비 감소됐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역시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 근로자까지 아우르는 '작업중지권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안전신문고'를 통해 휴대폰 접속만으로 간편하게 안전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한, 안전관리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365 안전패트롤팀'을 신설해 전 현장을 대상으로 불시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이 팀은 위험 요소를 선제적으로 제거함과 동시에 불안전한 상태가 발견될 경우 즉시 작업중지권을 발동해 현장 시정 조치를 시행 중이다.
DL이앤씨는 2022년 안전신문고 도입 이후 근로자의 자발적 참여 건수가 시행 첫해 대비 7배 가까이 급증했다. 참여 활성화의 비결은 보상 체계다. DL이앤씨는 안전 활동 참여 시 포인트를 지급하는 'D-세이프코인(D-Safe Coin)'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위험 요소를 미리 발견하고 제거하는 데 기여한 근로자에게 카카오페이 머니로 전환 가능한 포인트를 지급해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물산 작업중지권, DL이앤씨 작업중지권 활용 예시 (사진=각사)
이처럼 대형사들이 막대한 자본과 시스템을 투입해 안전 문화를 선도하는 가운데, 중견 건설사들 역시 안전 경영 체계를 구축하며 재해 예방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협력사 선정 기준을 강화하고 스마트 기술을 현장에 접목하는 등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두산건설은 신규 협력사 등록 및 평가 시 안전·보건 경영방침 수립 여부와 경영진의 안전 활동 실적을 필수 항목으로 반영하며 관리 체계를 강화했다. 반도건설 역시 협력사의 안전 보건 시스템 구축 지원을 전년 대비 100% 이상 확대하고 장비 결함 사고 감축에 매진하고 있다.
기술적 대응도 활발하다. 동부건설과 코오롱글로벌은 각각 연구개발 인력을 확충하고 데이터 기반의 사고 징후 포착 시스템 및 디지털 전환(DX)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금호건설은 AI 기반의 실시간 영상 분석 기술로 재난 안전 신기술을 획득했다.
이처럼 중견사들이 전방위적인 자구책을 마련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핵심 권리인 작업중지권은 공기 지연에 따른 막대한 비용 손실을 시공사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재 현장 판단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더라도 그에 따른 책임과 막대한 비용 부담이 시공사에만 집중돼 있다"며 "제도 활용에 부담이 너무 큰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공사 기간 준수가 수익성과 직결되는 중소 건설 현장에서는 작업중지권 행사가 사실상 '그림의 떡'에 가깝다. 발주처와의 관계에서 공기 연장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업중지권이 현장에 완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 합리적인 비용 분담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 A씨는 "작업중지권 행사와 관련해 불이익 방지 장치 및 면책 기준을 보다 명확히 제도화할 필요하다"며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를 비용이 아닌 필수 투자로 인정하는 제도적 환경이 조성돼야 실질적인 정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제언했다.
권리 남용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 마련도 과제로 꼽힌다. 고의적인 태업이나 근거 없는 작업 거부 등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책임 있는 권리 행사를 위해 작업중지권 남용 시에는 해고 사유로 인정하거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행사 시 불이익 처우를 허용하는 등 제한 조치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동시에 하도급사의 실질적 손실을 원도급사가 보전해 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