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나 탄소 없이 생명이 가능할까?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촉발한 의문
MIT 연구진, “황산도 생명 탄생 가능해”
실리콘 기반 생명체, 실험실서 탄생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포스터. 소니 픽처스
산소 대신 암모니아로 호흡하고, 초고온·초고압의 암흑 속에서 살기에 눈 대신 소리로 세상을 인식한다. 몸속엔 피 대신 수은이 흐르고, 다리가 다섯개 달린 돌거미 같은 외형을 가졌다. 3월18일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등장하는 외계인 ‘로키’의 모습이다. 인간과 생물학적 접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이 존재가 ‘과학’이라는 공용어 하나로 인간과 우정을 쌓아간다는 설정은 3일 기준 한국에서만 120만명이 넘는 관객을 사로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설정이 상상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물이 아닌 다른 액체를 용매로 삼는 생명 형태가 실제로 가능한지 탐구한 결과를 소개한다.
물 대신 암모니아·황산에 사는 세포
금성의 황산 대기와 화산활동을 묘사한 그림. NASA
지구 생명은 물속에서 작동한다.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가 화학반응을 하려면 분자가 녹아 움직이는 액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물만큼 다양한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용매가 없으므로 물이 생명 활동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미 항공우주국(NASA)이 외계 생명을 탐색할 때도 ‘물을 따라가라’는 기본 원칙을 준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느 분야에나 삐딱한 의견은 있는 법. 윌리엄 베인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연구진은 이같은 ‘물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2021년 학술지 ‘라이프’에 농축 황산이 생화학 반응 용매로 기능할 수 있는지 정량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 결과 지구상의 대부분 천연물질은 황산 속에서 1초 안에 절반 이상 분해됐다. 하지만 일부 합성 물질은 금성 구름층과 비슷한 수준의 고농도 황산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남아 있었다. 베인스 연구진은 편향 없는 이론적 분자 집합(43만여개)을 분석한 결과, 황산 속 실리콘 화합물이 탄소 화합물과 대등한 안정성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황산 환경에서 실리콘 화학 다양성이 물속보다 클 수 있다는 평가다.
연구진은 일부 나일론 등 고분자 탄화수소 물질이 황산 속에서 수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구조를 유지할 수 있으며, 종류 또한 생명을 구성할 만큼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금성처럼 대기가 황산으로 이루어진 행성에도 생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리콘 생명, 실험실에서 첫걸음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등장하는 암석 모습 외계인 ‘로키’. 아마존 MGM 스튜디오
탄소 대신 실리콘을 골격으로 쓰는 생명체 관련 연구도 흥미를 끈다.
지구상의 대다수 생명은 탄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실리콘은 탄소와 결합 방식이 비슷하고 지각 구성 비율이 28%로 탄소(0.03%)보다 풍부하다. 하지만 지구 생명은 실리콘을 거의 쓰지 않아, 우리 주변에선 돌이나 반도체 등에서나 이 이름을 들어볼 수 있다.
프랜시스 아널드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연구팀은 2016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리콘과 탄소를 결합하는 효소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아이슬란드에서 발견한 세균을 진화시켜 자연에 없는 실리콘과 탄소를 결합할 수 있도록 개량해냈다. 신체에 실리콘을 사용하는 생물이 전혀 불가능하진 않다는 의미다. 아널드 교수는 이 유도진화 기법으로 2018년 노벨화학상을 받기도 했다.
스크린 위에서 로키는 인간과 처음 안으면서 “포옹은 언제 끝나는 건지 어떻게 알아?”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과학자들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 생명의 정의는 어디까지일까. 지금까지 과학은 로키의 존재 가능성이 0%는 아니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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