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원
북을 쳐볼까, 채를 들고 슬쩍 건드려 본다
심드렁한 소리를 손바닥으로 쓸며 달래보는데
매끄러운 가죽이 숨죽이며 떤다
손목의 힘을 풀고 슬슬 북을 쳐본다
몇 번의 무두질로 가죽은 희미한 무늬마저 지워져서
어느 짐승의 순한 눈동자인지 들여다볼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맥박은 파들거리며 손끝에 잡힐 것도 같다
소리는 박자를 짚으며 점점 높아지는데
제 육신을 비워야 비로소 다른 육신을 떨게 할 수 있다는 듯
둥둥 저 짐승이 나를 흔들며 운다
북은 떨며 커다란 고치처럼 부풀어 오른다
팽팽해진 틈을 열고 웅크리고 있던 나방 한 마리
잠이 덜 깬 숲속으로 날아갈 것만 같다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끝내 비울 수 없어
오래 묵은 울음 한 마리 토해낼 수 없어
채를 내려놓고 일어선다
저린 오금을 펴며 천천히 일어선다
◇이창원=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였다.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였으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공부하였다. 2015년 시집 『이끼의 저녁』을 발간하고 2022년 제14회 목포문학상 시 부문 본상을 수상하였다.
<해설> 짐작하건대, 북은 인류가 수렵 생활을 할 때부터 존재해 온 친숙한 악기일 것이다. 결국 소리이면서 응축된 말이 두드림을 통해 전달되는 도구로도 읽힌다. 전투에서도 진출과 후퇴를 알리는 신호이거나, 여러 기분까지 담아 두드리던 악기이다. 심지어는 억울함을 호소하던 시절도 있었다. 동물의 가죽을 당겨 묶은 이러한 북을 시인은 행위를 통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채로 쳐보고 손바닥으로 달래도 본다. 문드러져서 어느 짐승의 눈동자 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손끝으로 마지막 파들거리는 숨결까지는 느껴본다. “둥둥 저 짐승이 나를 흔들며 운다”고 한다. 그리곤 고치로, 고치에서 나방으로 상상을 옮긴다. 잠이 덜 깬 숲속도 더듬어진다. 북과 한 몸이 되어 시인은 일렁거린다. 체를 놓고 오금을 편다. 행위가 끝나고 오래 남은 것은, 돌아오는 진동인데 그 깨달음은 “제 육신을 비워야 비로소 다른 육신을 떨게 할 수 있다는” 그런 것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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