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대학교 다닐 때 '대통령 만들기 모임'이 있었다. 재벌 아들 출신의 중심인물이 있고 그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각 대학교에서 1명씩 추천하여 모임을 만들었다. 그 중 한 명을 대통령이 되게 밀어주자는 취지의 모임이었다. 10명 쯤 되었는데 나도 영광스럽게도 그중 한 명으로 끼게 되었다. 모이고 보니 정말 눈이 초롱초롱하고 야심도 있어 보이며 똑똑한 학생들처럼 보였다.
매번 모일 때마다 술판이 벌어지고 빨리 친해지라는 미션을 받았다. 매번 그렇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하룻밤을 같이 자 봐야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으니 지방 여행이라도 같이 가자고 내가 제안했다. 좋은 제안이라더니 날짜가 다가오자, 하나 둘,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빠지는 것이었다. 결국 일박 여행은 무산되었고 그 모임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 모임을 겪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똑똑한 사람이 반드시 좋은 친구의 조건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똑똑한 사람은 계산이 빠르다. 친구끼리는 계산적으로 사귀면 안 되는 것이다. 집 떠나 지방에 가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고 생각하니 귀찮아지는 것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니 그렇지 않아도 스케줄이 바쁜 사람들이었다. 여동생 졸업식이 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 등등 각자의 불참 이유는 다 있었다. 그렇다면 날짜를 변경하면 되는데 그보다는 일박 여행은 거추장스럽고 귀찮다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성사가 되지 못한 것이다.
대학원 재학 시에는 명문대답게 부친이 유명 정치인, 유명 제약회사 사장 등, 쟁쟁한 집안의 아들들과 친해서 매번 수업이 끝나면 술집에 갔었다. 각각 또는 세 명이 친교를 나누며 삼총사라고 불릴 정도로 꽤 친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집에서 옆 테이블 손님들과 시비가 벌어지자 둘 다 나를 두고 도망쳤다. 이 일로 이들과 절교했다. 상류층이라고 반드시 좋은 친구는 아니라는 경험을 얻은 것이다.
직장 생활할 때 알게 된 후배가 있었다. 한가지 직업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미래를 위해 부업으로 돈을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자석을 수입하면 용도가 무궁무진하니 사업이 잘 될 거라고 했다. 마침 절친 중 한 친구가 총대 메고 사업을 전개하려고 하니 돈만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그 친구에 대해 좀 알아보려면 일박이라도 여행을 같이 다녀오자고 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역시 흐지부지되었고 그랜져 차부터 뽑자는 제안에 나는 손을 뗀다고 했다. 사업 시작은 맨바닥부터 해야 하는데 보기에만 그럴싸하게 그랜저가 왜 필요한가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을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믿고 돈을 투자하겠는가 싶어서였다.
최근에는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만나 꽤 친해졌다. 만나서 맛있는 것 사 먹고 노래방에도 가면 서너 시간씩 같이 놀았다. 일박 여행도 몇 번 다니다 보니 아주 친해졌다. 각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다. 물어보지도 않았다. 식성이 비슷하고 가치관이 비슷해서 좋았다. 그냥 만나면 즐겁고 부담 없어 좋은 것이다. 매일 단톡으로 그날 일과에 대해 얘기하고 안부를 묻는다.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사진을 보내도 배 아파하지 않는 사이다. 서로 '깐부'하기로 했다.
미 캔자스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끼리 친해지려면 정서적 유대가 형성된 사이인 좋은 친구는 140시간이 필요했고, 서로를 매우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정말 친한 친구가 되기까지는 300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간도 필요하지만, 시간이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집안이 좋다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나이쯤 되면 척 보면 안다. 경험치다.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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