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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1605년 12월 8일. 나의 파트너인 18세의 은 씨는 예쁘기가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 이상이다. 그럼에도 돌과 같이 굳게 초심을 지켜 끝까지 가까이하지 않았다""아침에 의향(義香)의 어미가 술과 안주 및 땔감 한 수레, 볏짚 한 수레를 가지고 촌가에서 왔다""이날 낮부터 감기를 앓기 시작해서 크게 아팠다. … 월매가 내내 병구완을 해주었다. 월매와 함께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눈물이 흘렀다. 의향의 어머니도 병구완하러 왔다"
'부북일기'에 나오는 조선 군관과 방직기(房直妓)와의 여러 일화 중 일부분이다. 일기에는 의향, 애춘이와 금춘이, 은 씨, 옥매향, 연향, 가지개, 건리개, 배종 등 방직기의 이름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조선시대 무과에 합격한 군관은 양반 신분의 초급 장교로 1년간 최전방인 함경도 등 국경지대에서 의무복무를 했다. 과거에 급제한 자들이라 해서 출신군관(出身軍官)이라 부른다. 이들은 근무 지역의 토착민들인 토착 군관보다는 높은 대우를 받았다. 문제는 부인이나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없었으니, 주거와 식사부터 군복 세탁과 수선 등 일상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는데다 혹시 병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임지인 국경에 도착하면 상관이 방직기를 배정해 주는데 관비 중에서 외모가 뛰어난 이들을 선택한다. 방직기의 역할은 다양했다.
군관들을 자신의 집에서 숙식하도록 하는 것을 비롯해 빨래와 청소에다 물자 보급과 간호, 성 접대까지 거의 모든 사생활을 담당했다. 방직기의 어머니도 땔나무나 반찬, 술과 안주 등을 제공하고 딸을 잘 봐달라며 청탁했다. 거부하면 곤장을 맞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봐서 자발적 봉사가 아닌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 동원이란 표현이 맞겠다. 기생이 맡으면 방직기라 하고, 여자 종이 담당하면 방직비(房直婢)라 불렀다. 요즘 말로 관사병이자 당번병이면서 가사도우미였다. 세종 때부터 변방 군대에 배정하기 시작해 대한제국 때까지 유지된 방직기 제도는 국경의 군대 유지를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도입된 관행으로 해석한다.
조선시대 군관과 방직기(ChatGPT의 AI 이미지). 김잠출 제공
부북일기를 쓴 아버지는 중년에 가까운 37세인 1605년 10월 15일부터 1607년 1월 1일까지, 아들은 혈기방장한 28세 때인 1644년 12월 9일부터 1646년 4월 4일까지 40년의 시차를 두고 함경도에 복무하며 일기를 썼다. 아버지는 동침한 기생을 '녹의(綠衣)''홍안(紅顔)'으로 에둘러 표현했고, 절제했다. "初心以石終不相近" 돌과 같은 굳은 초심을 끝까지 지켰다는 말이 나온다. 20세의 애춘이와 16세의 금춘을 보고 미모에 감탄하지만, 같은 마음을 먹었다. 물론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금춘의 유혹에 무너지긴 했다. 1644년 12월 26일. 일행인 박이명은 자칭 '인색대장군(忍色大將軍, 여색을 참을 수 있는 대장군)'이라 자부했지만 이날 밤 주탕(酒湯, 관가의 계집종) 도선(道仙)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또 다른 출신군관은 1644년 12월 9일 울산을 떠났는데 10일 처가에서 자고, 11일 계집종 통진, 15일 계집종 분이, 16일 주탕 춘일, 22일 주탕 향환, 26일 주탕 예현, 30일 기생 연향, 1645년 1월 1일 기생 가지개, 1645년 1월 2일 기생 건리개 등과 동침했다. 일행인 이확, 박이돈도 다르지 않았다. 近 抱 狎 同枕 同好… 동침을 표현한 한자이다. '近'은 '가까이 하다'란 뜻이다. 1645년 2월 6일 부북일기에 "저녁에 이석로와 이득영이 여색에 대패했다. 우스운 일이다. 박이돈은 나이 든 주탕 태향과 抱했다. 나는 우연히 옥매향(玉梅香)을 만나 近했다"라는 기록도 있다. '近''抱' 외에 '同枕(같은 베개를 벴다)''同好(같이 좋아했다)''狎(희롱하다)'등은 당시의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부북일기, 1605.12.27.)
'於于野談'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퇴계 선생이 남명 선생에게 물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술은 그래도 참을 수 있으나 여자 욕망(色)은 참기가 어렵습니다. 선생은 어떠십니까" 남명이 웃으면서 답했다. "여자에 대한 욕망에 대해선 이미 패배한 장수입니다. 말도 꺼내지 마십시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허구로 "햇볕에 비추어 된 역사라기보다 달빛에 바래져 만들어진 야담"일 뿐이다. 성욕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적보다 무서운 게 여색의 유혹이라는 것을 사례로 보여주는 픽션이란 말이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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