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서비스가 뛰어나고
관계관리 우수한 기업들
브랜드가 고객에 한 약속
실제 성과로 만들어내고
지속가능한 신뢰도 쌓아
기업 생존능력 끌어올려
브랜드가 고객에게 하는 약속이라면, 오퍼링과 관계는 그 약속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다. 지난 회에서 다룬 브랜드 탁월성(Brand Excellence)이 고객이 먼저 믿게 만드는 힘이었다면, 이번 회의 핵심인 제품·서비스 탁월성(Offering Excellence)과 관계관리 탁월성(Relationship Excellence)은 그 약속을 실제 성과와 지속가능한 신뢰의 구조로 완성하는 힘이다. "Essentials of Modern Marketing: Korea Edition" 후반부에 실린 나머지 19개 한국 기업·기관 사례는 한국 마케팅의 경쟁력이 더 이상 광고 문구나 일회성 히트 상품에서 나오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객의 문제를 더 정확히 정의하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해결하며 관계를 오래가는 자산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점을 이 사례들은 증명한다. 이것이 BOR, 즉 브랜드 탁월성·제품·서비스 탁월성·관계관리 탁월성을 하나의 체계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제품·서비스 탁월성의 핵심은 '더 좋은 제품'이 아니라 '더 정확한 문제 해결'이다. 이 점에서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장 상징적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위기 속에서도 고객의 과제를 '탄소중립과 전력안정의 동시 달성'으로 재정의하고, 가스터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소형모듈원전(SMR), 수소터빈, 해상풍력, 디지털 운영 관리, 배터리 재활용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설계했다. 특히 중후장대 기업도 '설비 공급자'에서 '전 생애주기 솔루션 파트너'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스맥스 역시 단순 ODM(제조업자 설계·개발·생산 담당)을 넘어 인공지능(AI) 기반 뷰티테크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코스맥스 AI연구센터를 축으로 색상과 제형, 사용감 예측을 디지털화하고 연간 약 8000개의 신제품을 개발하며 2000건이 넘는 특허와 OBM(제조업자 브랜드 개발 생산·판매) 플랫폼, ESG 체계를 더해 고객 성공까지 함께 설계하는 혁신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나머지 제품·서비스 탁월성 사례들도 각기 선명하다. ABL바이오는 플랫폼 바이오와 글로벌 기술이전으로 혁신의 확장성을 보여주고, 바른세상병원은 '바른 치료'라는 원칙 아래 비수술 우선과 과잉진료 배제로 의료 혁신의 신뢰를 쌓았다. 한국전력은 전력망 투자, 고전압직류(HVDC) 송전 시스템, 스마트그리드, 공공성을 하나의 오퍼링으로 재구성했고, 코트라(KOTRA)는 디지털 무역 플랫폼과 바이어 발굴 혁신으로 중소기업의 수출 지원 방식을 바꾸었다. 현대해상은 부모와 아이의 건강한 삶을 돕는 돌봄 프로그램으로 보험의 가치를 확장했고, 세라젬은 홈 헬스케어를 기술·디자인·임상 신뢰가 결합된 생활 혁신으로 발전시켰다. 가천대는 AI·메타버스·의공학 중심의 교육 혁신을, 신우그룹은 스마트 워터 솔루션과 기술 개발을 통한 위기 극복을 보여준다.
관계관리 탁월성은 관계를 많이 맺는 능력이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고 유지하며 필요할 때 회복하는 능력이다. 더현대 서울은 공간 혁신과 체류형 경험으로 백화점을 다시 정의했고, 네이버는 넷플릭스와의 네넷(NANET) 협업과 '오픈런(Open Run)' 캠페인을 통해 파트너십 마케팅과 신제품 론칭 플랫폼의 힘을 동시에 보여줬다. 롯데마트 보틀벙커는 와인을 상품이 아니라 취향과 학습의 경험으로 재구성했고, 카카오는 '프로젝트 단골'을 통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며 사회적 관계 자산을 축적했다. 센트온은 향기를 브랜드 경험의 일부로 만들었고, 빅웨이브로보틱스는 로봇 서비스(RaaS)와 솔링크(SOLlink) 플랫폼으로 로봇 도입의 불확실성을 낮추며 신뢰 기반 생태계를 형성했다.
이 가운데 하나금융그룹 사례는 관계관리 탁월성의 깊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하나금융은 관계 자산의 중심을 단순한 디지털 편의가 아니라 '신뢰의 제도화'에 두고 있다. 하나원큐 고도화, 하나 합(Hana HAP)을 통한 데이터 통합, HAI 상담지원봇, 블록체인 기반 송금 인프라스트럭처 실험은 고객 접점의 편의와 일관성을 높이는 장치들이다. 여기에 외국인 특화점포와 하나 이지(Hana EZ) 앱, 하나 부동산 올케어 솔루션, 하나은행 자회사 GLN과 생활 플랫폼 제휴,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포용금융과 ESG 실천이 더해지며 금융회사가 상품 판매자를 넘어 고객의 삶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제품·서비스 탁월성과 관계관리 탁월성이 결국 하나의 선순환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좋은 혁신은 고객과 파트너의 신뢰를 낳고, 좋은 관계는 다시 더 큰 혁신의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포트폴리오 전환이 생태계 협력과 장기 서비스 계약으로 이어지고, 코스맥스의 AI 연구개발이 고객과의 공동 성장을 낳으며 하나금융의 디지털 전환이 포용금융과 생활밀착형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모습이 그 증거다.
[이성호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