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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제2의 갱년기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몸보신을 생각해 동네에 새로 개업한 염소탕집에 갔다. 보신탕집이 없어지면서 염소탕집이 성업 중이다. 지나가다 보니 늘 줄이 길어 혼자 갔을 때 자리를 내줄까 걱정하며 들어갔는데 빈자리가 마침 딱 한 군데 있었고 주인도 의외로 반겨줬다.

제2의 갱년기

구글 선호출처 추가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몸보신을 생각해 동네에 새로 개업한 염소탕집에 갔다. 보신탕집이 없어지면서 염소탕집이 성업 중이다. 지나가다 보니 늘 줄이 길어 혼자 갔을 때 자리를 내줄까 걱정하며 들어갔는데 빈자리가 마침 딱 한 군데 있었고 주인도 의외로 반겨줬다. 단, 다른 손님이 오면 합석해도 좋다는 조건이었다.

좀 있다가 한 여인이 와서 앉았다. 혼자 밥 먹을 줄 알고 왔는데 겸상하게 되어 좋다며 말을 건넸다. 혼자 밥 먹으러 온 사람끼리는 각자 음식 나오면 고개 처박고 말없이 자기 것 먹고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 여인은 달랐다. 힐끔 보니 띠동갑 아래쯤 되어 보이는 나이에 피부도 건강하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 내가 처음이라 허둥대는 것을 보고 내 양념장도 만들어주며 붙임성이 좋았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혼자 밥 먹으러 왔으니, 나처럼 싱글일 가능성이 높다. 염소탕을 먹을 줄 안다면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도 마실 줄 알며 술친구가 될 소지도 있어 보였다. 걸어 왔으니 동네 사람이다. 행색으로 보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여 그것도 좋은 점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염소탕 한 그릇씩 먹고 나가면서 "차 한잔하자"는 제의를 하게 될 것이고 그녀가 "오케이" 하면 전화번호 교환하고 일사천리로 진도 나갈 판이었다. 멀지 않은 동네에 살 가능성이 크니 자주 만나고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천우신조의 만남이라 염소탕을 먹으면서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런데 마침 염소탕집이 만원이라 아주 시끄러웠다. 보신 식품이라며 반주로 술 마시는 사람도 많아 아주 시끄러웠다. 거의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는 못 견딘다. 음식이 제대로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염소탕을 먼저 비우기도 했지만, "먼저 일어나겠다"며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거기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니 그 여인도 좀 있다 나왔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따라갈까 했다가 나는 옆길로 샜다. 그 여인과 사귀게 되면 앞으로 벌어질 관계의 피로감이 몰려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명절이나 생일, 밸런타인데이, 연말연시 챙겨야 하고, 요즘은 만난 지 100일, 일 년, 이런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고 들었다. 물론 자주 만나 술도 같이 할 것이고 공연장이나 여행도 같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자유도 빼앗길 것이다.

혼자 잘 살아오고 있었는데 여러모로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맞춰주기 위해 수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쏟는 물리적, 심리적, 시간적 비용이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제2의 갱년기였다. 그전 같으면 '이게 웬 떡이냐'며 여인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사귈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이런 기회를 차 버린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피곤하다. 때로는 편하게 입고 나설 때도 있고 이발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모자 푹 눌러쓰고 나가면 편하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 건물에서도 오래된 사람들하고만 눈인사만 하고 지낼 뿐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오롯이 나를 위해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은 것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누리는 깊은 안식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고유한 삶을 즐기며 사는 것이 내게 맞는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면서도 오늘도 염소탕 집을 지나오면서 혹시 그녀가 지나가지 않을까 흘끔 보게 된다.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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