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 사진=솔리다임
이재명 정부의 선거 공약 첫 번째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이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AI) 3강으로 도약하고, 국가첨단전략산업에 대한 대규모 집중투자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국민성장펀드, 미래대응기금을 만드는 것은 첨단전략산업에 대한 재원 조달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증시 구조를 개선해 주가를 올리고 자금을 유입시키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소모적인 부동산 시장으로부터 생산적인 증시로 자금 흐름을 돌리려는 시도다. 일종의 부동산 대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국내 주가는 대체로 저평가돼 있다고 한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순자산에 비해 주가가 얼마나 되는가를 통해 저평가 기준을 제공한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미국(나스닥) 8.16, 일본(Nikkei 225) 2.57, 유럽(Euro Stoxx 50) 2.45에 비해 한국(코스피)은 1.67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배구조를 꼽는 의견이 많다. 우리나라 경제는 재벌의 선단식 경영을 특징으로 한다. 정부는 소수의 수출 대기업을 집중 지원했고 이들은 순환출자를 통해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다.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계열사를 지배하며 외형을 키웠다.
외환 위기 이후 지주사 방식으로 전환하는 추세지만 대주주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을 통제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주주는 최대한 외부 자금을 흡수해 사업을 확장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소액주주가 희생된다.
물적분할이 대표적이다. 기존 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를 신설하는 형태의 기업분할이다. 유망한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상장시키면 새로운 자금이 유입된다. 대주주는 모회사를 통해 자회사의 지배력을 유지하지만 소액주주의 지분 가치는 희석된다. 이를 중복상장이라고도 한다.
대주주의 전횡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말 기준 중복상장비율은 미국이 0.05%에 불과하나 우리나라는 11.2%에 달한다. 성장을 제일의 목표로 삼던 시대에는 정부가 이를 묵과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발전 궤도에 올라온 지금은 오히려 제약이 되고 있다.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무시하고 독주하는 배경에는 견제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 있다. 대주주는 이사회를 장악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킨다. 정부는 3차례의 상법 개정을 통해 약간의 견제 장치를 들여놓았다.
지난해 1차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했고, 2차 개정에서는 대규모 상장사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을 늘렸다. 지난 2월에는 기업의 자기주식 소각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하는 3차 개정이 이뤄졌다.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회로를 찾아 규제를 무력화시키지만 주주 환원은 늘어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자사주 소각액은 2023년 4조 8000억원에서 2024년 13조 9000억원, 지난해 21조 4000억원으로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책의 효과라고 확언하기 어렵다. 법 개정 이전에도 주주 환원은 증가 추세였다. 주주 환원은 반도체 및 자동차 등 글로벌 대기업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더구나 최근 반도체 산업의 대단한 호황으로 이들 기업은 대대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3000을 밑돌던 코스피 주가지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상승해 9385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AI 붐에 따른 반도체 기업의 이익 급증에 기인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으라고 정부는 단일종목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한도 상향 조정 등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후 주가는 속절없이 떨어져 6000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AI 거품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은 AI와 반도체 시황 때문이고 정책은 이에 기름을 끼얹는 방식으로 변동성을 키운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 상장 시도와 중단은 정책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솔리다임은 인텔의 낸드플래시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을 인수하면서 설립한 미국 회사다. AI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SSD가 주력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더불어 솔리다임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다. 미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자금을 추가적으로 조달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23일 미국 증시 상장 추진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그러한 의사 결정이 시장에 대한 기업의 판단인지 아니면 정부의 압력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배구조상으로 보면 SK 주식회사-SK스퀘어-SK하이닉스-솔리다임으로 이어진다. 솔리다임이 상장되면 이들은 모두 상장사가 되는 것이다. 단계를 내려오면서 지분 가치 희석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중복상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으나 미국 증시 상장에 이것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논란 거리다. 더구나 미국 정부의 눈치도 봐야 할 것이다.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추진이 중단되면서 논란은 가라앉았지만 유사한 사례가 빈발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을 부동산에서 증시로 이동시키는 것이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증시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통로다. 주가가 높게 형성되고 유동성이 풍부해진다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발행 시장이 활성화돼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유상증자 발행액은 3조 3953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의 6조 9682억원보다 51.3% 감소했다. 발행 건수도 28건으로 지난해보다 4건 줄었다. 같은 기간 대기업 유상증자 규모는 2조 5114억원으로 지난해 6조 2349억원에 비해 크게 감소했고, 반면 중소기업 유상증자는 7333억원에서 8839억원으로 20.5% 늘었다.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 조달도 줄었다. 기업공개 발행액은 1조 757억원으로 지난해의 2조 791억원보다 48.3% 감소했다. 기업공개 건수도 52건에서 30건으로 줄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특히 반도체 및 자동차 등 일부 산업의 대기업 비중이 높다. 대기업의 발행액이 줄면 증시에 대한 실질적 타격이 크다. 중복상장은 물론 유상증자도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지분 희석을 통해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정부의 소액주주 보호 정책은 분명 유통 시장 활성화에 기여했지만 발행 시장 활성화에는 역행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물론 논의조차 없다. 반도체 특수로 인해 주가가 크게 오르고 변동성이 급증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이 가려져 있다.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오히려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
주가 상승이 정책의 목표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자금이 기업에 흘러가 개발과 투자에 사용되고 이것이 경제의 선순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중간 단계가 무엇이 돼야 할까? 이런 질문 하에서 정부의 증시 정책은 점검이 필요하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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