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AI 확산에 따른 불평등을 줄이고, 환경·인권 중심의 ‘정의로운 전환’을 지속가능발전의 핵심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환경일보DB
[환경일보] “기후·AI 전환이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선 안 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AI) 확산이라는 거대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환경과 인권을 중심에 둔 ‘정의로운 전환’을 국가 지속가능발전의 핵심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2027년 대한민국의 두 번째 유엔 자발적 국가보고서(VNR) 제출을 앞두고 지난 10년간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 성과를 점검하는 동시에 개발과 효율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포용적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외교부와 한국시민사회SDGs네트워크는 27일 서울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기후위기·AI 시대 국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주제로 ‘제9회 열린 SDGs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2027년 한국의 두 번째 VNR 제출을 앞두고 국내 SDGs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2030년 이후 지속가능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와 시민사회, 학계, 기업, 지방정부, 청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석해 교육과 불평등, 지속가능한 소비·생산, 육상생태계, 이행수단 등을 중심으로 향후 과제를 논의했다.
2027년은 유엔이 2015년 채택한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의 이행 성과를 평가하고 2030년 이후 체계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도 10년 만에 VNR을 다시 제출하는 만큼 단순한 통계와 정책 실적을 넘어 지난 이행 과정의 한계와 향후 국가적 과제를 함께 담아야 한다는 데 논의의 초점이 맞춰졌다.
SDGs 이행 10년··· 양적 개선 뒤 질적 데이터 한계
포럼에서는 기후대응과 AI 기술 발전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또 다른 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외교부는 개회사를 통해 기후 대응과 AI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 속에서 특정 계층이나 지역이 뒤처지거나 새로운 격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우균 한국시민사회SDGs네트워크 대표도 “SDGs는 개별 목표를 각각 달성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목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의 문제”라며 이번 논의가 2027년 VNR을 넘어 2030년 이후 대한민국의 지속가능발전을 함께 설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력 수요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 확충에 한계가 나타나는 구조 역시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됐다. /사진=환경일보DB
정치권에서도 산업 전환과 기후정책을 사회적 형평성 문제와 함께 다뤄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 산업 확산에 따른 대규모 전력 소비가 탄소중립 이행에 새로운 도전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후위기 대응과 AI 산업 진흥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소득·지역·세대 간 격차가 확대되지 않도록 입법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기조강연에서는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을 하나의 구조적 변화로 접근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홍종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인공지능과 기후위기 시대, 지구와 대한민국은 지속가능한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을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쌍둥이 전환(Twin Transition)’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기후위기로 인한 물리적 위험과 탈탄소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위험이 국가·소득·지역·세대 간 기존 양극화와 결합할 경우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력 수요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 확충에 한계가 나타나는 구조 역시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됐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에너지 체계를 확대하는 등 에너지 전환과 지역 균형, 사회적 형평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회의에서는 한국의 SDGs 이행 10년을 데이터와 현장 관점에서 점검했다. 외교부는 2026년 유엔 고위급 정치포럼(HLPF) 결과와 2027년 제3차 SDGs 정상회의 전망을 공유하며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국제적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국가데이터연구원은 지난 10년간 국내 SDGs 이행 지표를 분석한 결과 일부 양적 지표는 개선됐지만 취약계층을 세분화해 파악할 수 있는 통계와 질적 데이터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무조정실은 2027년 VNR 준비 과정에서 통계와 정책 성과뿐 아니라 현장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해 한국의 지속가능발전 과제를 보여줄 핵심 메시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포럼에서는 기후대응과 AI 기술 발전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또 다른 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진제공=한국시민사회SDGs네트워크
“환경·인권 빠진 개발, 지속가능발전과 양립 어려워”
이어진 토론에서는 기존 통계와 정책 체계에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집단의 참여 문제와 산업 전환 과정에서의 노동권, 기업의 책임 있는 AI·ESG 전환, 지역 중심 거버넌스, 청년 참여 확대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인권 분야에서는 장애인 등 기존 통계만으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집단이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환경 분야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불평등 완화와 연계해야 한다는 제안이 제시됐으며, 노동계는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고용 안정이 함께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분야에서는 공급망 전반에서 책임 있는 AI 활용과 ESG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지방정부와 청년 측에서는 중앙정부 중심의 정책 설계를 넘어 지역의 권한과 청년 세대의 지속적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날 논의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산업 프로젝트가 지속가능발전의 원칙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제기됐다.
지난 8월 10일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제2차 점검회의 /사진출처=대통령실
일부 참석자들은 최근 추진되는 대규모 메가프로젝트가 환경과 인권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효율과 경제개발 중심으로 추진될 경우 지속가능성을 오히려 후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한국의 환경적 지속가능성 지표 가운데 개선이 더딘 분야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 위주의 정책이 반복된다면 2030 SDGs 달성과 국제사회에서의 지속가능발전 리더십 확보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지속가능발전이 지난 30여년간 국제사회가 공유해 온 핵심 규범인 만큼 경제성장뿐 아니라 생태계 보전, 기후위기 대응, 인권 보호, 사회적 형평성을 정책 결정의 핵심 기준으로 함께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후위기와 AI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층적 불평등을 줄이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 기업, 학계는 물론 취약계층과 지역사회의 실질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또한 양적 성장과 목표 달성률을 넘어 삶의 질과 권리,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포용적 거버넌스 구축이 향후 국가 SDGs 정책과 2027년 VNR 준비 과정의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한편 한국 이해관계자 그룹은 이번 포럼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인천대학교에서 열리는 ‘동북아 SDGs 포럼’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동북아 6개국 정부·시민사회 관계자들과 국내 논의 결과를 공유하고 ‘동북아 시민사회 성명서’를 발표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지역 차원의 연대와 실천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