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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류장에서 배우는 민생

아침 일찍 집을 나서다 보면 문득 발길이 머무는 곳이 있다. 버스정류장이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지 몰라도 버스를 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류장은 하루가 시작되는 자리다. 삶이 출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정류장에는 늘 사람들이 있다.

정류장에서 배우는 민생

최경호 수필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서다 보면 문득 발길이 머무는 곳이 있다. 버스정류장이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지 몰라도 버스를 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류장은 하루가 시작되는 자리다. 삶이 출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정류장에는 늘 사람들이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있고 점퍼 깃을 세운 노동자가 있다.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이 있고 병원 진료를 가는 노인도 있다. 저마다 갈 곳은 달라도 기다리는 마음은 비슷하다. 버스가 제시간에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가끔 정류장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신문보다 정류장에 더 많이 있다. 버스가 늦어 걱정하는 학생의 얼굴에도 있고 출근 시간을 재며 시계를 들여다보는 노동자의 눈빛에도 있다. 몇 정거장 더 걸어야 한다며 한숨짓는 어르신의 어깨에도 있다. 그래서 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서민들에게 버스는 생활이고 생계다. 삶을 이어주는 다리다.

울산은 자동차를 만드는 도시다. 세계로 수출되는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많은 시민들은 버스에 몸을 싣고 하루를 살아간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도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시장 상인도 버스를 이용한다. 학생과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자동차 광고가 아니라 시민들의 발이 되어 주는 시내버스다.

지난해 울산시는 27년 만에 시내버스 노선을 전면 개편했다. 더 효율적인 교통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노선은 바뀌었지만 불편은 사라지지 않았다.

북구 주민들은 출퇴근 시간마다 만원버스에 시달리고 있다. 동구 주민들은 직통노선이 줄어들면서 환승 부담을 안게 되었다. 울주군과 강동권 주민들은 긴 배차간격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버스 한 대를 놓치면 삼십 분을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다. 젊은 사람에게 삼십 분은 불편일 수 있지만 어르신에게 삼십 분은 고역이다.

행정은 숫자로 판단하지만 시민은 몸으로 느낀다. 노선도 위에서는 효율적인 선이 될 수 있어도 시민의 일상에서는 돌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통계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 불편이 있다. 병원 가는 길이 멀어진 노인의 사정이 있고 학교 가는 길에 환승이 늘어난 학생의 이야기가 있다.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 힘들어진 주부의 한숨도 있다. 정치는 바로 그런 한숨을 듣는 일이어야 한다.

새로운 울산시정이 곧 출범한다. 김상욱 시장당선자는 시민 중심의 행정을 약속했다. 시민 중심이라는 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시민이 매일 겪는 불편을 해결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첫 번째가 버스 문제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품격은 높은 건물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민들이 얼마나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어르신도 어렵지 않게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학생도 안전하게 학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도시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특히 버스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절실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버스는 중요하다. 청년들은 교통비를 아껴야 하고 어르신들은 버스에 의지해 생활한다. 장애인과 교통약자에게 버스는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중교통은 단순한 이동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의 문제다. 이동권의 문제다.

시정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더 많은 사람을 편하게 하는 정책. 힘없는 사람의 불편을 먼저 살피는 정책. 그것이 정치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버스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수익성보다 공공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효율성보다 시민의 삶을 먼저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정류장에 서 있는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버스 안에서 오가는 불편을 듣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책상 위 지도만으로는 시민의 길을 알 수 없다.

버스 한 대는 작아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많은 시민의 하루가 실려 있다. 노동자의 땀도 실려 있고 학생의 꿈도 실려 있다. 어르신의 외출도 실려 있고 가족을 향한 귀갓길도 실려 있다. 그래서 버스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시민을 바라보는 일이다. 새로운 시정이 정말 시민 중심을 말한다면 가장 먼저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시민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들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은 행정의 시간이 아니다. 시민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더 이상 허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민생은 멀리 있지 않다.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시민 곁에 있다. 버스정류장의 작은 한숨 속에 있다. 울산의 새로운 변화도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시민의 발이 편해야 시민의 삶이 편하다. 그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시정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시민들이 새 시장에게 가장 먼저 바라는 약속일 것이다. 최경호 수필가·불교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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