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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동칼럼]주주 대 근로자

엔비디아·구글·메타 등 미국 빅테크는 현금 성과급을 고정 공식으로 운영하지 않으며,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심의 주식 보상을 이사회 결의로 부여한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나 프랑스의 법정 이익참여제 또한...

[정동칼럼]주주 대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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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시한 직전 극적으로 잠정 합의안에 서명했다. 한국 경제 전체를 긴장시켰던 반도체 생산 차질 우려는 일단 가라앉았지만, 회사 안팎의 논란과 갈등은 여전하다. 성과급에서 소외된 사업 부서를 중심으로 잠정 타결안에 대한 부결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주주단체들은 “주주총회 결의 없는 자본분배 합의는 법률상 무효”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영업이익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목소리는 다른 주요 기업들로 번져 나가는 중이다.

과연 기업이 만들어낸 잉여가치는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귀속되어야 하는가. 회사법의 전통적 논리는 주주를 잔여재산청구권자로 규정한다. 채권자와 근로자에게 계약상 확정된 몫을 지급하고 남은 잉여이익이 주주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주주는 잉여이익에 대한 청구권을 갖는 대신 위험을 부담한다. 적자가 났을 때 주주들은 배당을 받지 못하거나 주가 하락을 감수하는 형식으로 손실을 부담하지만, 근로자는 회사가 적자를 내도 약속된 임금을 요구할 수 있다. 영업이익이 산출되기 전에 이미 자기 몫인 급여를 받은 근로자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추가로 가져가는 것은 배분 순서상 자기 차례가 지난 후 채권자·정부·주주의 몫에서 선취하는 것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법 차원에서 임금과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은 의무적 교섭사항인 반면 이익의 처분 방식과 배당 정책은 경영권의 고유 영역으로 분류된다. 이번에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을 불사하며 내건 요구는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라 ‘영업이익의 15%’ 배분을 단체협약에 명시해 이익처분 구조를 제도화하겠다는 것으로서 근로조건보다는 경영사항에 가깝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것은 SK하이닉스의 선례다. 2025년 9월 SK하이닉스는 노사 합의로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며 상한까지 폐지했고, 2026년 초 직원 1인당 기본급의 2964%에 달하는 역대 최대 성과급이 지급됐다. 삼성전자 노조를 자극한 SK의 선례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 합의의 배경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개인적 결단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MZ 상소문’ 사태를 최 회장이 연봉 반납으로 직접 수습한 것이 영업이익 연동 방식 도입의 계기였고, 2025년 상한 폐지도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안의 결정 과정이다. 영업이익의 10%를 10년간 성과급으로 고정하는 결정은 회사의 이익처분 구조를 장기적으로 제도화하는 중대사안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이사회의 공식적인 심의나 주주총회에서의 논의 없이 노사 교섭만으로 처리됐다. 2025년도 사업보고서에 적시된 SK하이닉스의 이사회 현황을 보면 2025년 9월에 이루어진 노사 합의와 관련해 이사회는 열리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고액의 연봉이나 성과급, 스톡옵션을 부여할 수 있고 이것은 경영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전체 근로자의 몫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성과급이 좀 더 보편화된 외국 유사 기업들의 경우를 보면 결정의 주체와 그 과정이 우리의 경우와 다름을 알 수 있다. TSMC는 비슷한 비율을 직원에게 배분하지만, 성과급 총액을 이사회 산하 ‘보상 및 인재 개발 위원회’가 검토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주주총회에서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엔비디아·구글·메타 등 미국 빅테크는 현금 성과급을 고정 공식으로 운영하지 않으며,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심의 주식 보상을 이사회 결의로 부여한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나 프랑스의 법정 이익참여제 또한 근로자의 이익 참여를 제도화하되, 입법이라는 사회적 합의의 틀을 통해서다. 어느 모델에서도 파업의 위협이나 총수의 개인 결단이 이익처분 구조를 10년간 고정하는 동인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주주와 근로자 간 지위의 구별을 영원불변의 진리인 양 신봉하는 것도 오류다. 하지만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의 경우처럼 회사의 이익처분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 이사회나 주주총회와 같은 기업거버넌스상 주요 의사결정기구를 소외시킨 채 결정되는 것은 문제다. 이사회가 회사, 전체 주주, 그리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주주총회의 검증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무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보다 성숙된 기업거버넌스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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