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지옥철 대신 거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한때 대기업 명함을 내밀던 이들이 이제는 회사 이름 대신 자신의 노하우로 돈을 번다. 대기업 사원증과 전문직 타이틀을 내려놓고 지식 크리에이터로 변신해 1년 안에 매출 1억원을 넘긴 이들이다.
‘고래돈공부 웅달’ 대표가 대표적이다. 대기업을 떠난 그는 지식 플랫폼 ‘팬딩’에서 인생 2막을 열었다. 거시경제와 지정학 이슈를 골라 국내 자산 시장과 연결한 브리핑을 유료 멤버십 회원에게 매일 제공한다. 최근 증시 열풍과 맞물리며 6개월여 만에 억대 수입을 올렸다.
일명, 신종 직업인 ‘경험자본가’의 대표 사례다. 경험자본가란 매경이코노미가 만든 신조어로 화려한 학위나 자격증보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얻은 실전 노하우와 시행착오를 자본으로 바꿔 수익을 내는 사람들이다.
카이스트 박사·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출신으로 AI·딥러닝을 교육하는 혁펜하임 대표. (혁펜하임 대표 제공)
경험자본가 왜 늘었나
지식 플랫폼 훌쩍 성장
경험자본가가 늘어난 배경에는 노동 시장 변화만 있는 게 아니다. 평생직장 개념이 옅어지며 본업 밖 수입원을 만들려는 ‘N잡’ 문화가 퍼졌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발달이 기름을 부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 덕분에 교안 작성과 영상 편집 문턱이 낮아지면서 평범한 직장인도 지식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소비 트렌드도 바뀌었다. 대중은 거대한 담론보다 당장 내 삶의 문제를 풀어주는 초개인화 실용 지식에 더 쉽게 지갑을 연다.
이 흐름을 타고 지식 플랫폼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과거처럼 창작자를 플랫폼 안에 묶어두는 대신, 이제는 창작자 성향에 맞는 도구와 구조를 제공하며 함께 성장하는 방식이다.
스타트업 ‘팬딩’은 창작자 맞춤형 커뮤니티 구축이라는 록인 효과로 차별화했다.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와 재테크 전문가 등이 팬딩 안에서 팬덤을 만들며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확보했다. 누적 팬 회원 수 150만명, 유료 멤버십 가입자 수 10만명을 넘겼고, 2025년 연간 거래액은 650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 290억원보다 2.24배 늘었다. 플랫폼 내 상위 100명 창작자 평균 수익은 10억원에 달한다.
‘라이브클래스’는 편의성을 앞세운 D2C 솔루션으로 문턱을 낮췄다. 복잡한 개발 지식 없이도 창작자가 자체 채널을 열어 강의와 전자책을 직접 운영하도록 돕는다. 결제와 커뮤니티 운영까지 통합 지원해 창작자는 콘텐츠 기획에 집중하면 된다. 무료 콘텐츠에서 고가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상품 구조 설계도 지원한다. ‘라이브클래스’를 운영하는 퓨쳐스콜레의 2025년 연간 총거래액은 482억원이다. 2023년 76억원, 2024년 236억원에 이어 3년 만에 6배로 커졌다. 비타민신지니 같은 대형 유튜버뿐 아니라 구독자 1만명 안팎의 중소형 창작자도 월 수천만원대 수입을 올리는 생태계가 형성됐다.
전문가 플랫폼 ‘크몽’은 B2B 시장에 집중했다. 인공지능 매칭 기술로 프로젝트 성공률을 높이고, 법인 고객 전용 관리 툴을 강화해 기업 비즈니스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새로 선보인 ‘크몽 Biz’는 1년 만에 연간 거래액 100억원을 돌파했다. 크몽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 약 38억원으로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또 다른 전문가 매칭 플랫폼 ‘숨고’는 가격 정보가 불투명하고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던 서비스 시장의 정보 비대칭 해소에 주력했다. 이사·청소·인테리어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부터 디자인·IT 개발·외국어 레슨까지 1000여개 카테고리에서 소비자와 전문가를 연결한다. 2021년 480만명이던 누적 이용자 수는 최근 1500만명을 넘겼다.
이처럼 플랫폼이 깔아놓은 인프라 위에서 각자 경력과 시행착오를 상품으로 바꾼 경험자본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분야도 IT·재테크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 창업, 세무, 예술까지 저마다의 전문성과 사연을 무기로 인생 2막을 연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 경력 단절 여성, 사업 실패자라는 과거를 뒤로하고 지식 크리에이터로 변신해 1년 안에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이들을 소개한다.
(1) IT·데이터 전문성으로 어필
어려운 기술도 쉽게 풀어 인기
우선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 기술 전문성을 대중적 지식 비즈니스로 바꿔 단기간에 성과를 낸 사례가 눈에 띈다.
혁펜하임 혁펜하임아카데미 대표는 카이스트 박사이자 삼성전자 책임연구원이라는 이력을 뒤로하고 딥러닝 전문 교육 기관을 세웠다. 딥러닝 모델(Legend 13), 트랜스포머 심화 과정 등 진입 장벽이 높은 최신 AI 기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단순 영상 강의에 그치지 않고 기수제 라이브 방송을 결합해 수강생 학습 효과를 높였다. 이런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1년 안에 매출 1억원을 달성했다.
대기업 개발자 출신 공석민 아답터교육 대표는 직장인과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데이터 역량 수요가 커지는 흐름을 읽었다. 직장 경험을 살려 데이터분석 준전문가(ADsP), 빅데이터분석기사, SQLD 등 IT 자격증 강의를 선보였다. 맞춤형 교재는 인기를 끌었고, 유튜브 누적 조회 수는 100만회를 넘겼다. 수요를 정확히 짚어 6개월 안에 1억원을 벌어들였다. 그는 어려운 IT 개념을 비유로 쉽게 풀어낸다. 다른 강의도 꾸준히 보며 수강생이 막히는 지점을 찾고, 촬영 후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찍을 만큼 완성도에도 공을 들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표는 대기업 IT팀에서 일하다 데이터 기반 부동산 분석 플랫폼을 세웠다. 매매전세지수, 매물 수, 금리, 통화량, 고용 등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투자 판단법을 가르치는 심화 강의를 제공한다. 6개월 과정 수강료는 52만원이다. 감과 소문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력 덕분에 수강생 리뷰 평점 5점 만점을 유지하고 있다. 철저한 분석력을 지식 상품으로 바꿔 6개월 안에 매출 1억원을 달성했다.
(위) 자동화 수익 창업을 교육하는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의 안영신 소장.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 제공)
(중간) 온라인 쇼핑몰 창업 교육 ‘플랜잇’으로 유명한 김대영 시크리스 대표. (시크리스 제공)
(아래) IT 개발·화장품 사업을 거친 김훈 대표는 ‘미국주식으로 부자되기-미주부’로 해외 주식 투자 강의 채널을 운영한다. (미주부 제공)
(2) 실패·경력 단절 위기 돌파
생생한 실전 경험으로 컨설팅
인생의 실패나 경력 단절 위기를 스스로 돌파하며 얻은 경험을 팔아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했던 우연화 성장연구소 대표는 퇴사 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 공포를 겪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창업학을 파고들었고 경영컨설팅 업체 성장연구소를 세웠다. 공무원 면접 강사 경험과 학원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출과 직결되는 실행형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VOD, 라이브 강의, 커뮤니티, 컨설팅까지 다양한 형태로 운영한다. 창업 직후 연매출 1억원을 넘겼고, 2년 만에 개인사업자를 법인으로 전환했다.
개발자로 일하다 사업 실패를 겪은 박하연 큐제이스쿨 이사(활동명 소액임차)는 부동산 경매 현장에서 다시 일어섰다. 15년간 누적 낙찰 400건, 명도 코칭 1000건을 이끈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경매 올인원 패키지 강의를 열었다. 수익을 좇기보다 수강생이 실제 경매 시장에서 낙찰받고 성공하는 비율을 높이는 데 사활을 걸었다. 뼈아픈 실패 경험을 딛고 얻은 진정성 있는 교육으로 6개월 만에 1억원 매출을 이뤘다.
외국계 보험회사 영업사원 출신 안영신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장은 자동화 수익 창업 교육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했다. 쿠팡 판매자가 되는 법, 중고 명품 매매로 창업하기 등 시스템 기반 수익 모델을 전수한다. 라이브클래스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맞춤형 메타 광고 컨설팅을 도입해 모객 스트레스를 없애고 매출을 극대화했다. 여유 시간을 새로운 교육 콘텐츠 발굴에 투자하며 1년 안에 매출 1억원을 돌파했다.
마지막으로 단계별 상품 구조를 치밀하게 설계해 수익을 키운 사례도 있다. 무료 강의로 문턱을 낮추고 고가 컨설팅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미국주식으로 부자되기-미주부’ 채널을 운영하는 김훈 대표는 코로나19 때 경험자본가의 길에 들어섰다. 10년 넘게 화장품 사업을 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그는 재고와 물류 부담이 없는 디지털 콘텐츠에 주목했고,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2개월 만에 11만명을 넘기며 온라인 강의를 본격화했다. 그는 주식 입문자가 스스로 기준을 세워 투자할 수 있도록 템플릿과 자료를 제공하는 강의를 운영한다. 초보자 눈높이에 맞춘 설명에 집중했고, 현재는 강의와 유튜브 수입 외에 매일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터디 클럽도 운영하며 억대 연봉을 올리고 있다.
(3) 팬덤·커뮤니티로 승부
실전 경험 담으면 멤버십 늘어
지식 비즈니스 시장에서 대중은 뜬구름 잡는 정보보다 실제 경험에서 나온 시행착오를 더 신뢰한다.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팬덤을 만든 이들은 큰 수익을 거뒀다.
기업 인사팀 직원이던 임화영 올리버여행기 실장은 스마트폰 촬영과 편집 노하우를 나누며 6개월 안에 매출 1억원을 올렸다. 처음부터 상품 판매에 매달리지 않았다. 자신이 실제 여행에서 쓰는 영상 촬영 설정값과 사진 구도 등 구체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진정성에 반응한 대중이 몰리면서 팔로워 200명 계정은 두 달 만에 10만명 규모로 커졌다. 그는 거창한 전문가가 아니어도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나누는 작은 공유가 지식 비즈니스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기업 인사팀 출신 박민수 더스마트컴퍼니 대표도 소통을 통해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제네시스박’이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세금 실전 가이드를 제공하는 그는 단발성 강의 판매에 의존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유튜브로 팬덤을 쌓고 이를 연회원 멤버십으로 연결했다. 수강생과 지속 교류하며 유대감을 키운 덕분에 안정적 유료 모델을 안착시켰고, 6개월 안에 1억원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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