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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쟁 리스크 흡수 나섰다"… 산은·수은, 산업에 선제 유동성 공급

물류, 원자재, 전력, 반도체, 생활경제까지 전 산업이 동시에 휘청이고 있다. 25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반도체, 해상풍력, 이차전지, AI 인프라 같은 메가 프로젝트에 이미 자금 공급을 승인해 놓은 상태에서, 시장...

"전쟁 리스크 흡수 나섰다"… 산은·수은, 산업에 선제 유동성 공급

-호르무즈 리스크 속 공급망 충격 현실화…정책금융, 산업 방어선에 진지전 구축해

-반도체·AI·에너지·화학까지 ‘국가가 먼저 조달’…기업 투자 리스크 구조적으로 흡수

중동에서 시작된 군사 충돌이 해협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 전반을 흔들고 있다. 원유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류, 원자재, 전력, 반도체, 생활경제까지 전 산업이 동시에 휘청이고 있다. 25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채권 발행과 대기업 협약을 동시에 꺼내 든 배경은 여기 있다.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먼저 자금을 수혈해 산업 리스크를 흡수하겠다는 신호다.

산업은행은 이날 3000억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채권’을 처음 발행했다. 채권 구조는 국가채무보증 한도(15조원) 안에서 장기적으로 반복 발행되는 구조다. 만기 1년, 금리 3.04%라는 조건 자체보다 중요한 건 자금 수혈 ‘속도’다. 반도체, 해상풍력, 이차전지, AI 인프라 같은 메가 프로젝트에 이미 자금 공급을 승인해 놓은 상태에서,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필요한 돈을 즉시 투입할 수 있는 파이프 라인을 만들었다.

이 구조는 기존 정책금융과 다르다. 과거에는 기업이 투자 계획을 세우고 금융이 가치평가를 한 뒤 현금과 저당권 설정 등을 통해 뒤따랐다면, 지금은 국가가 먼저 풀(pool)을 만들고, 기업이 그 안에서 투자를 실행하고 있다.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 특별법이 전력·용수·도로 같은 인프라를 국가 책임으로 명문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설비투자 이전 단계 리스크를 정부가 흡수하겠다는 구조다.

수출입은행의 움직임도 같은 방향이다. LG전자와 체결한 협약에서 AI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수출 프로젝트에 3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단일 기업 지원처럼 보이지만 함의는 다르다. ‘AX 특별프로그램’ 우대금리, 협력사 대상 금융, 스마트팩토리 구축 지원까지 묶인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 위기 상황에서 대기업–중소기업–지역 제조업을 하나의 수출 체인으로 만들어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핵심은 ‘냉각’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만큼 냉각이 중요하다. 전력망과 열관리 기술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에너지–인프라–반도체가 사실상 하나의 산업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면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데이터센터 운영비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는 AI 인프라 투자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수출입은행은 이 연결고리를 미리 끊어내겠다는 것이다.

두 정책금융 기관이 자금 집행을 통해 시장에 던진 신호는, 올해 초 통과된 반도체 특별법과 지난해 말 제정된 석유화학 특별법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반도체는 전력·용수 등 인프라 병목을 국가가 직접 해소하고, 석유화학은 공급 과잉 구조를 제도적으로 정리한다. 여기에 정책금융이 자금을 얹는 방식이 결합됐다. 산업 정책과 법, 금융이 하나의 체계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위치도/사진=이상일 시장 페이스북

정책금융 기관이 과거와 달리 속도를 높이는 배경에는 에너지 전쟁 리스크가 자리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와 LNG, 화학제품이 오가는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한국은 중국·일본과 함께 아시아 3대 에너지 소비국이지만, 에너지의 99%를 수입에 의존한다. 이 구조에서는 투자 수익률보다 ‘생산이 가능한가’가 더 큰 변수로 작동한다. 이번 조치는 길어질 ‘공급망 전쟁’에 대비한 군수사령부의 탄약 조달에 가깝다. 국가가 산업 구조 위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가격이 아니라 공급 자체를 흔든다. 이런 환경에서는 민간 자본이 선뜻 움직이기 어렵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리스크를 감당할 여력과 의지가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환율과 관세 부담까지 겹치며 운신의 폭은 더 좁아졌다. 공백을 메울 주체는 정책금융으로 수렴된다.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산업이 멈추지 않도록 떠받치는 역할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책금융은 수익을 내기보다 산업에 산소호흡기를 다는 역할에 가깝다”며 “당분간은 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국가가 깔아준 구조 위에서 기존 경쟁력을 지켜내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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