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한옥마을.=전주시 제공
가지런히 놓인 까만 기와지붕 아래, 낮게 둘러쳐진 담장 너머로 따스한 햇볕이 대청마루에 깊이 내려앉는다. 골목길을 거닐다 만나는 집마다 닮은 듯 다채로운 포근함이 마당 가득 흘러넘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이자 연간 1500만 명 이상의 발길이 이어지는 전주한옥마을의 아늑한 풍경이다. 시간의 결 위에 세운 삶터, 전주한옥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편집자
△저항과 자긍심으로 올린 기왓장, 한옥마을의 태동
정갈한 기와지붕 아래에는 100여 년 전 일제의 수탈과 도시 침탈에 맞섰던 선조들의 뜨거운 저항 정신이 깊게 정초해 있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자리했던 전주는 예부터 수려한 문화와 정갈한 음식, 신중한 선비 정신이 꽃피운 예향이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성안으로 대거 진입하고 1911년 전주부성의 성벽이 철거되면서 상권과 주거권을 일제 세력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됐다.
이에 반발한 전주 주민들은 1930년 전후를 기점으로 풍남문 동쪽인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똘똘 뭉쳐 한옥을 지어 올리기 시작했다.
서쪽의 일식 가옥과 일본 상권에 맞서 민족적 자긍심을 지켜내기 위한 배수의 진이자 문화적 투쟁이었다.
오목대 언덕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촘촘히 이어진 기와지붕의 물결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좁다란 골목길마다 오밀조밀 모여 앉은 이 도시형 한옥군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버텨낸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버텨낸 민족정기와 고집스러운 삶의 궤적이 오롯이 남아있다.
1960년대전경=전주시 제공
△도심 슬럼화에서 ‘핫플레이스’로 극적 반전
해방 이후 세월이 흐르며 한옥마을은 또 한 번의 커다란 변곡점을 맞았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노후화된 개량한옥과 일상적인 주택들이 뒤섞여 있던 평범한 원도심 주거지에 불과했다.
까다로운 행정 규제와 비싼 보수 비용 탓에 빗물이 새는 집을 방치하거나 떠나는 주민들이 늘어났고, 한때 폐가촌에 가까울 만큼 도심 슬럼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기도 했다.
반전의 계기는 2000년대 초반 시작된 전주시의 대대적인 정비 사업이었다. 노후한 한옥을 수리하고 환경을 정비하면서, 경기전과 전동성당, 전주향교, 오목대 등 기존 역사 자원과 어우러진 특색 있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이후 SNS의 확산과 방송 매체 노출, 레트로 문화 열풍이 맞물리며 한옥마을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한복을 차려입고 고즈넉한 골목을 누비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전국에서 이어졌고, 2016년에는 연간 관광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CNN과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아시아 주요 명소로 이름을 올렸다.
나아가 서부신시가지 개발로 자칫 슬럼화될 뻔했던 전주 구도심 상권을 활성화하고, PNB풍년제과 등 지역 향토 브랜드를 기사회생시키는 등 전주 경제를 이끄는 핵심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현재 전주한옥마을 전경=전주시 제공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인근=전주시 제공
전주한옥마을 상권=전주시 제공
△전통과 현대가 온전히 어우러지는 역사 공간으로
단기간에 이뤄진 급격한 양적 성장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겼다.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부상하자 한옥마을의 성장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겼다.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부상하자 꼬치구이, 길거리 음식 등 정체성과 무관한 상업 시설들이 범람했고, 부동산 임대료가 치솟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화됐다.
극심한 소음과 교통 체증, 정주 여건 악화로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원주민들이 떠나면서 전통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옥마을은 다시금 자정 노력을 기울이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전주시와 지역 공동체는 단순한 소비형 관광지를 넘어 고품격 역사문화 공간으로의 재도약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경기전의 태조 어진과 전주향교의 고즈넉한 풍경, 다채로운 전통 마당극과 문화 체험 프로그램 등 내실 있는 콘텐츠로 한옥마을을 채우고 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굳건한 터전에서 출발해, 도심의 위기를 극복한 문화 거점을 거쳐온 전주한옥마을.
지나친 상업화의 파도를 넘어 전통의 온전함과 현대 삶의 여유가 온전히 어우러지는 지속 가능한 역사 문화 공간으로 다시금 그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박세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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