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전라 Insight] 강길선 교수의 세계여행기. 3. 이탈리아 만토바

만토바현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속해 있다. 만토바현의 코뮤네는 모두 70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15~17세기 만토바 공국의 수도였다. 1328년 곤자가 가문의 곤자가 공작이 만토바 공국을 다스렸다. 16세기에는 피렌체와 시에나 등과 함께 르네상스를 주도할 만큼 부자도시였다.

[전라 Insight] 강길선 교수의 세계여행기. 3. 이탈리아 만토바

바람과 파도는 언제나 유능한 뱃사람의 편이다.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만토바현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속해 있다. 만토바현의 코뮤네는 모두 70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고 15~17세기 만토바 공국의 수도였다. 1328년 곤자가 가문의 곤자가 공작이 만토바 공국을 다스렸다. 16세기에는 피렌체와 시에나 등과 함께 르네상스를 주도할 만큼 부자도시였다. 포강의 하류 평야에 흘러드는 민치오강의 반도 형태에 세워진 도시로 자연적으로 방어가 쉬운 곳에 형성되었다. 베로나에서 남쪽으로 25㎞, 모데나에서 북쪽으로 35㎞, 밀라노에서 동쪽으로 130㎞ 그리고 베니스에서 기차로 40분 떨어져 있는 곡창지대이다.

만토바 출신으로 이탈리아를 통틀어 유명한 사람이 베르길리우스다. BC70년 황제의 명을 받아 대서사시 아이네스를 쓴다. 라틴어로 쓰여져 당대 로마를 넘어 유럽의 문학의 효시라고 평가된다. 내용은 조선의 용비어천가, 포르투갈 루이스 카몽이스의 우스 루지아디스(1572) 형태의 대서사시이다.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탈리아문학,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의 신곡에 나와 단테와 함께 연옥과 지옥을 드나든다.

만토바 역에서 두칼레 궁을 비롯한 구시가지가 나온다.구시가지가 천혜의 해자 구조를 하고 있다. 16세기 만토바 공국 형태로 번영을 누리다가 곤자가 가문이 후계자가 끊기면서 1707년 합스부르그 왕가에 병합되었다. 후에 나폴레옹에게 침략을 당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공국은 한 국가의 수도와 맞먹는 기능을 하였기 때문에 성당부터 궁전 등 어느 도시 못지않게 화려하고 대단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가 활동했던 곳이고 리소르지멘토(1850년경의 이탈리아 통일 운동)도 활발했다.

우선 삼랑으로 된 산 프란체스코 성당은 참으로 소박하다. 만토바 대학 본부의 건물도 같이 있고 아르코 왕궁(Plazzo d’Arco) 박물관도 있다. 돔을 향하여 계속 가면 산 안드레아 대성당을 만난다. 산 안드레아 대성당은 ‘황금 전설’로 유명하다. 로마시대에는 죄수를 십자가에서 처형을 하면 죽은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창으로 찔러 심장에 남은 피를 빼낸다. 죽음을 맞이한 예수도 똑같이 옆구리를 찔러 심장의 피를 빼냈다. 옆구리의 상처, 양손과 양발에 있는 못 자국의 다섯 군데의 상처를 오상(五傷)이라고 한다. 론지노라고 하는 군인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피가 흘러나온 것을 확인하였다.

자신의 창으로 흘러내린 예수의 피를 병에 담아 보관했다. 얼마 있다 론지노가 눈병을 앓아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예수의 피를 바르니 눈이 완치되는 기적을 체험한다. 사도의 제자가 되어 포교와 수도 생활 후에 순교하였다. 이 예수의 피는 로마 라테가노 대성당, 파리 생트 샤펠 성당과 만토바의 산 안드레아 대성당 등에 보관되었다. 가장 많은 양이 산 안드레아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돔 아래의 대리석 밑에 황금의 전설, 예수의 피가 모셔져 있다.

이 산 안드레아 대성당이 만토바 대성당보다 훨씬 웅장하다. 이탈리아 전역의 다른 성당과 비교해도 호화롭고 웅장하기 그지없다. 예수의 피 때문이다. 이탈리아 15세기 르네상스 건축을 공부할 때 꼭 들어가는 이유이다. 줄리오 로마노와 코레지 등의 성화가 그야말로 엄숙하고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이들 화가의 스승님들은 안드레아 만테냐와 라파엘로이다! 역시 스승의 제자들이다.

산 안드레아 대성당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는 지면 1m 아래 위치한 산 로렌조 로톤다 경당이 있다.  1083년에 지어서 제일 오래된 교회이다. 옆에는 1330년에 지어진 소르델로 광장이 있다. 벼룩시장이 크게 열렸다. 왼쪽에는 두칼레 궁전, 오른쪽에는 비앙키 궁전, 뒤쪽에는 만토바 대성당이 있다.산 안드레아 대성당이 워낙에 크다 하더라도 만토바 대성당은 만토바를 대표하는 대성당인 만큼 내부의 경당이 엄청나다. 제단 아래는 도시의 수호성인인 산 안젤모 다 바지오(St. Anselmo da Baggio)가 있다.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경당은 산 요셉 경당, 산 도미니코 경당, 성삼위일체 경당, 산 요한 경당 등이 서로의 신심과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강가 쪽으로 나오면 두칼레 궁전이 있는데, 한참 때는 500개 이상의 방이 있었던 화려한 궁전이었다. 곤자가 가문에 루도비코가 유명한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로 하여금 부부의 방을 꾸몄다. 특히 천장에 어린 천사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이 유명하다. 호화의 극치이다. 각 공국들 간의 경쟁의 산물이다. 모든 그림이 독창적이다. 박물관도 볼만하다. 자연사 박물관 정문 앞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집이 있다. 베르디가 이 집에서 리골레토를 작곡했다. 정원에는 비통해하는 베르디의 동상이 있다.

르네상스 시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600년에 통치자 빈첸초 곤자가는 만토바를 문화와 과학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고자 예술가와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중에는 갈릴레이, 루벤스도 있었다. 중요한 다른 한 사람은 젊은 음악가인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도 있었다.

1600년 10월 피렌체에서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메디치 가문의 마리아의 결혼 축하연이 있었다. 음악과 극이 혼합된 야코포 페리/줄리오 카치니 공동작곡, 오타비오 리누이치 대본의 에우리디체(Euridice)가 공연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오페라이다. 이곳에 빈첸초 곤자가와 둘째 아들 페르디난도도 있었다. 빈첸초 곤자가는 메디치 가문의 엘 레오노라와 결혼했는데 마리아의 언니였다. 이후 차남 페르디난도와 형 프란체스코는 몬테베르디에게 이 음악극 오페라를 만들어 보라고 주문하였다. 이에 오르페오(Orfeo, 오르페우스)를 작곡하여 1607년에 곤자가 두칼레에서 초연한다. 오케스트라는 30인 이상으로 굉장하였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섬세히 표현하였다.

만토바가 피렌체에 앞서 오페라의 도시로서 이름을 날리던 순간이었다. 후에 몬테베르디는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의 음악 감독으로 옮겨 오페라를 계속 연구하였다. 이렇듯 새로운 창조는 음악과 극을 융합하여 벽을 허물었고 또한 피렌체와 만토바는 오페라를 경쟁을 하여 오페라를 창조하고 동시에 격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음악·미술을 위시하여 건축·의술·과학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것이 르네상스 시절에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발명되거나 발견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테 궁전은 이 궁전이 지어진 지명이 일 테(il Te)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세출의 건축가 줄리오 로마노의 걸작으로 르네상스의 화려함에서 매너리즘적의 화려함으로 전환하는 특징이 있는 건물들이다. 로마노와 함께 베네디토 파그니와 리날도 만토바노 등의 화가가 프레스코화 작업을 하였다. 전체적으로 궁전 내에 그려진 그림들이 매우 독특하고 독창적이었다.

만토바는 이탈리아의 여느 공국의 수도와 다를 바 없는 대단한 소도시이다. 시내의 건축물의 특징적인 것이 로지아이다. 이는 지붕이 있는 외부 갤러리 또는 부도를 일컫는다. 복도는 외부벽이 부분적으로 열려 있고 상부는 일반적으로 일련의 기둥이나 아치로 지지된다. 올리브 오일, 치즈 등이 유명하다.

한때 곤자가 공작의 공국이었던 만토바는 두 개의 대성당과 그리고 예수의 피, 거대한 왕궁들 그리고 초기 오페라를 촉진시킨 것으로 기억하며 볼로냐로 향한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