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4월 설립된 전주공고 초기 모습
전주공고 1층 현관에 마련된 100년 역사 타임라인
세대가 바뀌고 산업이 바뀔 때마다 학교가 가르치는 기술도 달라졌다. 한때는 종이를 만들고 대나무를 깎는 기술을 가르쳤다. 지금은 자동차와 전자 분야 인재를 키운다. 올해 개교 110주년을 맞은 전주공업고등학교 이야기다. 지물과와 죽공과, 가구과에서 시작된 학교는 산업화 시기 기계와 전기 기술자를 길러냈고, 오늘날에는 인공지능과 드론 등 새로운 산업을 뒷받침할 기술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종이와 대나무를 다루던 기술은 바뀌었지만,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학교의 역할은 그대로다. 110년 직업교육의 역사를 품은 전주공고를 찾아가 봤다.
현재 전주공고 모습
'지성·용기·창조'. 전주공고 곳곳에 내걸린 교훈이다. 학교의 교훈이라고 하면 근면이나 성실, 정직 같은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전주공고는 달랐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마지막 단어인 '창조'였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을 익히며,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문을 연 역사관 안에는 그 의미를 보여주는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1917년 졸업생 명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학과, 졸업 여부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명부 옆에는 학적관계철과 성적고사표, 사령원부가 나란히 놓여 있다. 종이는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었으나 기록은 여전히 또렷했다.
1916년 문을 연 전주공고는 현재 학생 수 708명, 누적 졸업생 4만218명을 기록하고 있다. 개교 10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자료를 확보해 한문으로 작성된 기록들을 번역·정리했고, 그렇게 모인 자료들이 지금 역사관을 채우고 있다.
1918년도 졸업생 사진
역사관을 둘러보다 보면 전주공고의 역사가 단순한 학교 연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교가 가르친 기술의 변화가 곧 시대의 변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개교 초기 학생들은 종이 관련 기술을 배우는 지물과와 대나무 공예를 익히는 죽공과에서 공부했다. 이후 생활용품 제작 기술을 가르치던 만물과와 가구과, 옻칠 기술을 배우는 칠공과 등이 생겼다.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당시 산업과 생활을 떠받치던 기술들이었다.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0~1970년대에는 학교의 모습도 달라졌다. 건축과와 토목과, 기계과와 전기과가 중심 학과로 자리 잡으며 지역 산업 인력 양성의 거점 역할을 맡았다.
학교의 성장 과정은 교정의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전주공고는 전동과 경원동, 교동, 진북동을 거쳐 1981년 현재의 여의동 교정으로 이전했다.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기고 학과가 바뀌는 동안에도 학교는 늘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교육의 중심에 서 있었다.
과거 전주공고 학생들이 입었던 제복(왼쪽부터 교련복, 교복, 관악대(오케스트라)복
현재 전주공고는 건축과와 토목과, 기계과, 전기과, 자동차과, 전자과 등 6개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미래 산업 분야 교육도 확대하며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학교의 시간은 지금도 새로운 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촬영이 전주공고에서 진행되면서 교문과 강당, 복도 등 학교 곳곳이 영상에 담겼다. 과거 졸업대장과 흑백사진이 학교의 시간을 기록했다면 오늘날에는 드라마와 영상이 또 다른 기록이 되고 있었다.
미래를 향한 기록도 이미 시작됐다. 역사관 한편에는 2016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타임캡슐이 보관돼 있다. 당시 학생과 교직원, 동문들이 남긴 기록과 물품이 담긴 타임캡슐은 개교 200주년이 되는 2116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1917년 졸업생 명부와 2116년 개봉될 타임캡슐 사이에는 200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전주공고의 역사는 그렇게 과거의 기록에서 미래의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홍학 전주공업고등학교 교장
▲<미니 인터뷰> 오홍학 전주공업고등학교 교장.
"110년 역사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시간"
오홍학 전주공고 교장은 학교의 가장 큰 자산으로 110년 동안 이어온 역사와 전통을 꼽았다.
오 교장은 "전주공고는 4만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라며 "산업 현장 곳곳에서 활약하는 동문들과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가 학교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주공고 학생들의 가장 큰 강점으로 '열정'을 꼽았다. 오 교장은 "직업계고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비교적 일찍 선택한 학생들"이라며 "자격증 취득과 기능경기대회, 프로젝트 수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누구보다도 훨씬 성실하고 열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전통만으로는 학교의 미래를 만들 수 없다고도 했다. 오 교장은 "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 지금은 가르치는 기술 자체가 다르다"며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이 바뀌는 만큼 학교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10년 역사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시간"이라며 "학생들이 기술인으로 성장해 우리 사회와 산업을 이끄는 인재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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