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딜레마에 우는 유통·소비재·가전 업종
저PBR 탈출 열쇠는 결국 ‘본업 경쟁력’ 회복
롯데쇼핑과 이마트 전경 이미지. <챗GPT로 합성>
정부가 저PBR 기업에 칼을 빼 들었다. 저평가 상장 기업이 국내 증시를 끌어내리고 있어서다. 이들은 어째서 시장에서 낮은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그 뒤에는 시장의 불신이 있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저평가 기업을 크게 넷으로 분류했다. △좋은 자회사가 있어도 구조적으로 할인을 받는 지주사 △이익은 나지만 규제와 자본 제약에 묶인 금융·공기업 △자산은 많지만 효율이 낮은 기업 △불황기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경기민감 기업이 그것이다. 각 유형별 핵심적 문제와 저평가 탈피를 위해 개선할 점을 총 4편에 걸쳐 분석한다.
유통·소비재·가전 기업들은 한국 증시의 대표적인 ‘자산 부자’들이다. 전국 요지의 부동산과 촘촘한 유통망, 압도적인 생산 시설을 갖춰 장부상 수조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 평가는 냉랭하다. 롯데쇼핑, 이마트, 현대백화점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장부가치의 절반, 심지어는 0.2~0.3배 수준인 ‘만년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주된 요인으로는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영업이익률이 동시에 낮은 산업적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본업 수익성이 낮고 주주의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산을 활용해 벌어들이는 수익성이 낮으면 장부가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PBR은 1배 미만으로 떨어지기 쉽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자산을 쌓아두기만 하고 요구수익률 이상의 이익을 내지 못하면 그 자산을 청산해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이 기대감이 반영되지 않을 때 주가가 장부가치 밑에서 형성된다.
수익 지지부진… ‘자산의 저주’에 갇힌 기업들
자산은 많지만 수익률이 부진한 유통·식품 기업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롯데쇼핑·이마트·현대백화점·CJ제일제당·오뚜기 등이다. 이들의 주무대인 국내 내수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여파다. 업황이 회복돼 수익성이 좋아져도 매출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힘든 구조라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을 성장주로 보지 않는다.
LG전자와 같은 가전 기업 여건도 비슷하다. 글로벌 가전 시장은 이미 보급률이 높아 교체 수요 위주로 돌아간다. 주요 가전의 연평균 성장률 또한 한 자릿수(1.7~4.3%)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 저하가 지속되며 시장 매력도가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업종 특유의 고정비 부담 또한 저평가를 부채질하는 요소다. 백화점, 대형 마트, 가전 기업은 공통적으로 막대한 자산(부동산, 설비)을 보유하고 있어 인건비·임대료·유지비 등 고정비 비중이 매우 높다. 이는 곧 매출이 조금만 감소해도 이익 급감으로 이어진다.
오프라인 대기업의 경우 쿠팡, 네이버 등 이커머스·플랫폼 기업들에 비해 확장성 측면에서도 뒤쳐진다. 플랫폼 기업은 초기 투자 후 가입자가 늘어나면 추가 비용 없이 수익이 급증하는 구조다. 그러나 전통적인 대기업들은 성장하려면 또 다른 매장이나 공장을 새로 증설해야 하는 만큼 비용 부담이 크다.
저PBR 늪에 빠진 롯데쇼핑·이마트
<자료: WiseReport · 인사이트코리아, 그래픽: 손규미>
유통 대기업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롯데쇼핑을 보자. <인사이트코리아>가 지난 3월 27일 종가 기준으로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인 기업의 PBR을 조사한 결과, 롯데쇼핑의 PBR은 조사대상 기업 중 가장 낮은 0.21배에 머물러 있었다.
이날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약 3조2400억원이었는데,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약 6800억원(시가총액의 21%)으로 이 회사를 통째로 사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롯데쇼핑은 ROE 또한 0%대로 저조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롯데쇼핑의 지난해 기준 ROE는 0.34%(2025년 말 기준)다.
백화점 빅3인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사정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자산가치 대비 저평가 수준을 보여주는 PBR의 경우 신세계는 0.66배, 현대백화점은 0.40배에 불과하다. 자본을 활용한 수익률을 보여주는 ROE도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은 각각 0.32%와 4.64%%에 그쳤다(2025년 말 기준).
백화점 3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 추이 비교.<자료: FnGuide, 그래픽:손규미>
이처럼 백화점 3사의 ROE의 저조한 수익성은 은행 정기예금 금리와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정기예금 상품 중에서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곳은 케이뱅크의 ‘코드K 정기예금(3.20%)’이다.
이는 곧 백화점 빅3가 수 조원의 자기자본으로 수백개 점포를 운영하면서 대규모 인력을 고용해 사업을 벌였음에도 얻은 수익률이 최저 0.32%, 최대 4%대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이럴 바엔 그 돈을 그냥 은행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놀면서 이자를 받는 게 낫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이들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뭘까.
다만 롯데쇼핑이 극도의 저PBR주가 된 데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 우선 지난 2024년 실시한 토지재평가가 영향을 끼쳤다. 롯데쇼핑은 당시 토지재평가를 통해 약 9조5000억원에 달하는 재평가잉여금을 자본에 반영했다. 이에 따라 자기자본이 약 17조원으로 크게 불어났으나 그에 걸맞은 이익을 창출하지 못해 PBR 수치가 더욱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본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쇼핑은 백화점 사업이 견조하긴 하나, 이커머스(롯데온)와 마트·슈퍼 사업에서 장기간 적자 및 낮은 수익성이 지속되고 있다. 본업 외 사업 부진이 전체 ROE를 깎아먹고 있는 것이다. 경쟁사 대비 보유 자산 규모가 큰 상황에서 이를 활용한 수익 창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마트도 동종 업종 내에서 대표적인 저PBR 종목으로 꼽힌다. 이마트의 PBR은 0.24배(3월 27일 종가 기준)로 롯데쇼핑과 더불어 극심한 저평가 상태에 놓여 있다.
이마트도 본업인 오프라인 유통업 악화와 성장성 정체로 고전하고 있다. 이마트 저평가 기저에는 온라인 전환 지연 및 경쟁 심화가 자리하고 있다. 쿠팡, 알리 등 국내외 이커머스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매력이 크게 감소해서다. 이는 낮은 영업이익률로 이어지며 이마트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 밖에 낮은 배당성향과 지배구조 이슈 또한 이마트 기업 가치가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
유통기업들, 밸류업 모색하며 변화 시작
다행히도 유통기업들은 최근 들어 공격적인 밸류업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며 변화에 나서고 있다. 저평가 구조를 탈피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다.
이마트는 오는 2027년까지 최저 배당금을 주당 2500원(기존 2000원)으로 상향하고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자사주 2% 이상을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백화점은 자사주 제로를 선언하고 올해 주총 시즌에 맞춰 총 3500억원 규모(10개 계열사 포함)의 자사주 소각을 단행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상장 이후 최초로 중간배당을 실시한 데 이어 결산배당을 2800원으로 확정해 연간 합산 주당 배당금을 4000원으로 확대했다. 이와 더불어 올해 매출 14조3000억원, 영업이익 65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목표 전략도 제시했다.
LG전자 또한 오는 2027년까지 ROE 10%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자사주 소각과 추가 매입을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수준)을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증권가는 이들 기업의 재평가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자산 가치 대비 극심하게 저평가된 기업들이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할 경우 강력한 주가 상승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익성 증명해야 저평가 탈출”
전문가들은 저PBR 탈출의 근본적인 해법은 수익성 증명에 달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의 자본시장 정상화 기조에 발맞춰 유통사들도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수익성을 증명하는 본업 경쟁력에 달려 있다”며 “펀더멘털의 뒷받침 없는 밸류업은 동력을 잃기 쉬운 만큼 유통업 특유의 이익 구조를 혁신하고 장기적인 성장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시장 신뢰를 제고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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