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지금부터 10년 전인 2016년 3월 13일,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벌인 ‘세기의 대국’ 4차전에서 승리했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전 세계에 생중계된 연속 대국에서 사흘 내리 충격적인 3연패를 당했던 그는 드디어 이날 불계승을 거두고 활짝 웃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이틀 뒤 다섯 번째 대국에서 또 졌고, 최종적으로 1승 4패를 기록했다. 그가 거둔 한 번의 승리는 인간이 알파고와 겨뤄 유일하게 이긴 기록으로 남았다. 다음 해 알파고와 맞선 중국의 커제 9단은 3전 3패로 대국을 마친 뒤 울음을 터뜨렸다. 구글의 딥마인드는 인간 고수를 다 꺾은 알파고의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생명과학용으로 개발된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등의 성과로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노벨 화학상을 안겼다. 알파고가 다녀간 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인공지능 열풍이 불었다.
2022년 말 오픈에이아이(OpenAI)가 챗지피티(ChatGPT)를 공개하면서 그 열풍은 더 거세졌다. 챗지피티와 제미나이, 클로드 등 생성형 인공지능의 놀라운 성능과 효용에 미디어, 산업, 교육, 행정 등 많은 분야가 요동쳤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편성해 인공지능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국내 대표 정보기술 기업들을 지원해 ‘소버린(주권) AI’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국회는 인공지능기본법을 제정해 제도적 뒷받침에 나섰다. 이 모든 움직임 뒤에는 ‘AI가 약속하는 미래’에 관한 기대가 있었다. 인공지능 분야 기업가와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경제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풍요를 가져오며, 암과 기후위기 등 인류 의 난제를 해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재난의 예측과 대응, 복구 등 전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지금 인공지능은 재난에서 인간을 구하는 조력자가 아닌, 전쟁의 살상 도구가 되어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 챗봇 클로드가 군사용 영상 분석을 하는 팔란티어의 메이븐 시스템에 탑재돼 사실상 ‘두뇌’ 구실을 한 것으로 보도 됐다. 특히 미국 정부는 클로드를 만든 앤트로픽이 최소한의 윤리 기준을 지키기 위해 ‘인공 지능을 완전 자율 무기 개발에 사용하지 말 것’ ‘미국민 대상 대규모 감시 시스템에 활용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고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했다. 그러자 오픈에이아이가 그 계약을 꿰찼다고 많은 사람이 비난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군사 작전의 두뇌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영국의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챗지피티, 클로드, 제미나 이 최신 모델로 분쟁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95% 이상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했다는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연기 피어오르는 이란 수도 테헤란. 연합뉴스 제공
반면 재난 현장의 인공지능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대표적으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핵연료 잔해 제거 작업을 들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3월 지진해일에 침수돼 전원이 끊기면서 노심용융과 수소폭발이 일어났는데, 녹아내린 핵연료 잔해를 제거하는 작업에 15년째 별 진전이 없다. 로봇을 이용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강력한 방사선 때문에 고장이 나버려, 수백 톤의 잔해 가운데 고작 몇 그램을 시험 반출했을 뿐이라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핵연료 잔해 반출과 원전 폐로까지 앞으로 7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재난 복구 인공지능이 잘 개발되지 않는 것은 기술적인 이유인지, 의지 부족 탓인지 몹시 궁금하다. 하루 수조 원까지 쓰는 전쟁에 비해 ‘판돈’이 너무 작기 때문일까.
인공지능 기업들이 제시한 미래는 잘 보이지 않고, 인공지능이 가속하는 불평등과 일자리 불안, 허위조작정보의 확산은 피부에 와닿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이 챗봇 상담에 의존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은 “기술과 AI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누가 그 혜택을 보는지가 중요하다” 며 “혁명적인 AI 기술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활용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이 인공지능의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진 못하지만, 방향 없이 휩쓸리진 않아야 한다. 인공 지능 개발자와 기업도, 정부와 국회, 언론, 시민사회도 지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 를, 무엇을 위한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
*이 글은 3월 13일 자 [제정임의 탐조등]을 신문사 허락 아래 전재한 것입니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공감됐어요
0
너무슬퍼요
0
잘읽었어요
0
화가났어요
0
후속원해요
0
관련기사
‘용인 반도체 공장, 전기 많은 곳으로 가야’ 53%
AI 데이터센터, 물과 전기는 준비됐나
균형발전 촉진 '지역별 전기요금제' 제자리걸음
환경을 교실 안으로 끌어들인 마중물 선생님
헌재가 준 ‘기후 입법 시한’ 넘긴 국회, 속사정은
키워드
#제정임 칼럼
#인공지능
#전쟁
#재난구조
#챗지피티
#알파고
#생성형 인공지능
#소버린 AI
#재난
#이란
#이스라엘
저작권자 © 단비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