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학대 거주시설 발생 53%
정부 구조 개편·탈시설 정책 추진
소규모 주거 놓고 여러 시각 충돌
최중증 돌봄 대안은 여전히 공백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인 색동원 /연합뉴스
수년간 이어진 성폭력이 외부에 알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지 않았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사건은 또 한 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장애인 시설 학대는 반복되고 여전히 늦게 드러나는가.
여성경제신문이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 실태와 제도 대응을 점검했다. 2월 인천 강화군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시설장이 여성 입소자 등을 상대로 수년에 걸쳐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피해는 장기간 이어졌고 일부 피해자는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태였다.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건은 상당 기간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
학대 반복되는 폐쇄적 시설 구조
생활지도 등을 빌미로 여성 장애인들과 강제 성관계를 맺거나 유사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 등(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피보호자 간음 등·장애인복지법상 폭행)을 받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시설장 김모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2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은 개인 범죄를 넘어 장애인 거주시설 구조 자체의 문제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폐쇄된 환경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구조·외부와 단절된 생활·내부 신고에 의존하는 감시 체계가 결합하면서 학대가 장기화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3월 <왜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는 반복되고, 늦게 드러나는가>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구조를 수치로 설명했다. 장애인 학대 판정 사례 1449건 가운데 집단시설에서 발생한 비중은 23.8%(345건)였고 이 중 절반 이상(184건)이 거주시설에서 발생했다.
가해자의 87.5%는 시설 종사자였고 5년 이상 지속된 사례도 28.8%에 달했다. 피해자의 76% 이상은 발달장애인이었으며 본인 신고 비율은 12.5%에 그쳤다. 보고서는 “현행 제도가 학대를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는 데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작동 방식이었다. 신고 의무는 있지만 내부고발자는 해고나 재취업 불이익을 우려해 침묵한다. 인권지킴이단은 시설장 관여 구조로 독립성이 제한된다. 권익옹호기관 역시 신고 이후에만 개입할 수 있어 예방 기능에 한계가 있다. 정기 조사도 반복적 점검에 그치면서 실제 위험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신고자 보호 강화 △인권지킴이단의 지자체 중심 위촉 △권익옹호기관의 불시점검·직권조사 권한 확대 △고위험 시설 중심 심층 조사 체계 전환 등을 제시했다.
사후 대응서 사전 예방으로 정책 전환
이 같은 진단 이후 15일 정부가 내놓은 것이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 예방 및 인권강화 종합대책’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기존 사후 대응 중심 체계를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8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대책에는 일부 보완이 담겼다. 민원과 인력 변동 등을 기준으로 위험시설을 선별해 집중 점검하는 방식은 기존 정형화된 점검 체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인권지킴이단 운영을 지자체 중심으로 재편하고 외부 전문가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독립성 문제를 일부 반영한 조치다.
동시에 시설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다인실 중심의 집단 거주 형태를 소규모 생활 단위로 전환하고 독립형 주거 서비스를 확대해 시설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이 방향은 입법에서도 확인된다. 3월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고 국회 본회의 상정과 통과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법안은 장애인을 복지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규정하고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와 탈시설 지원을 명문화한 기본법 성격의 법안이다.
다만 심의 과정에서는 탈시설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이 추진될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정부와 발의 의원 측은 “당장 시설이 폐쇄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계적 추진 방침을 강조했다.
이미 별도의 법률을 통해 정책 방향은 구체화된 상태다. 2025년 3월 공포된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의 신청·조사·개인별 지원계획·주거 전환과 정착 지원까지 지역사회 이행 절차를 제도화했다. 정책과 입법 모두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탈시설 vs 돌봄 공백 엇갈리는 해법
하지만 해법을 둘러싼 시각은 충돌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소규모 생활 단위 전환과 독립형 주거 확대를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탈시설을 주장해 온 장애인 단체들은 시설 학대의 근본 원인을 집단 수용 구조로 본다. 이들은 규모를 줄이는 방식은 본질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운영 주체가 여전히 시설에 있고 생활 공간이 분산되더라도 관리 구조가 유지되는 한 기존 체계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소규모화는 시설을 유지한 채 형태만 바꾸는 접근으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반면 최중증 장애인 영역에서는 소규모 전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들은 개별 주거 형태가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본지 보도 '
중증장애인 외면한 자립지원법···주거·돌봄 대책 없이 법부터 통과
'에서 김현아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대표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돌발 행동과 사고 위험이 높아 상시적인 관찰과 즉각 대응이 필수적인데 개별 주거 형태에서는 이러한 대응이 충분히 이뤄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독립형 주거와 자립지원주택 구조에 대해서도 “외부와의 접점이 제한된 상태에서 1대 1 돌봄으로 운영될 경우 오히려 고립과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주거 형태는 시설의 폐쇄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반대로 감시 공백이 발생할 경우 위험을 외부에서 포착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활동지원 인력에 의한 장기간 학대나 돌봄 공백으로 인한 사망 사례가 발생한 바 있어 주거 이전만으로 안전이 확보되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소규모 전환을 포함한 현행 정책 방향을 두고도 서로 다른 이유에서 비판이 이어지면서 제도 보완만으로 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시설 구조 개선과 제도 정비를 병행하고 있고 국회 역시 관련 입법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주거·돌봄 대안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 전환이 진행될 경우 현장에서 혼란과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 문제를 둘러싼 핵심 쟁점은 시설 유지 여부를 넘어 실제로 안전과 돌봄이 보장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모이고 있다.
☞탈시설=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시설 수용 중심의 장애인 정책을 자립 생활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국제적 흐름이자 장애인 인권 운동의 핵심 의제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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