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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동희 대사의 시사칼럼]투표지 없는 투표소, 빚만 남은 청춘…2030의 분노와 '공정'의 민낯

6.3 지방선거가 남긴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를 향한 민심의 심판은 이제 막 시작된 모양새다.

[장동희 대사의 시사칼럼]투표지 없는 투표소, 빚만 남은 청춘…2030의 분노와 '공정'의 민낯

장동희 전 주핀란드대사, 전 경북대 초빙교수

6.3 지방선거가 남긴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를 향한 민심의 심판은 이제 막 시작된 모양새다. 좌우를 대변하는 거대 양당의 선거결과를 둘러싼 내분은 제쳐두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주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에 분노한 2030 세대는 재선거와 철저한 진상규명, 그리고 선거 관리 체계의 제도적 개혁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급기야 6.10 민주항쟁 39주년을 맞이한 지난 6월10일에는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으며, 시국 선언에 동참하는 대학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민주화 운동이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지금 청년들의 외침은 국가 시스템의 기본적 신뢰를 무너뜨린 무능과 그동안 쌓여 온 불공정에 대한 분노다.

이번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행정적 미숙함이 부른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는 청년 세대의 깊은 불신과 박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수년 전 하버드대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 사회에서 이례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사회현상과 맥을 같이 한다. 당시의 열풍이 정의에 대한 갈증이었다면, 지금 2030의 스크럼은 무너진 공정을 바로잡겠다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그렇다면 지금 청년 세대가 온몸으로 부르짖는 ‘공정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국제법학자이자 뉴욕대 로스쿨 교수를 지낸 고(故) 토마스 프랭크(Thomas M. Franck)는 공정성(Fairness)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축으로 과정과 절차의 정당함을 뜻하는 ‘정당성(Legitimacy)’과, 분배적 정의를 의미하는 ‘형평(Equity)’을 제시하였다. 이 명징한 기준을 이번 지방선거에 대입해 보면 왜 2030이 이토록 분노하는지 명확해진다. 민주주의의 가장 신성한 현장이어야 할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표를 던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른 행위는 선거라는 민주적 과정의 ‘정당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규칙이 공정하지 않은 게임에서 나온 결과는 결코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 청년들의 주장이다.

더욱이 2030이 체감하는 불공정은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에만 그치지 않는다. 분배적 정의로서의 ‘형평’ 역시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정년연장이나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은 결국 현재의 4050 세대에게 혜택을 집중시키고, 미래의 구조적 부담은 고스란히 2030 세대에게 전가하는 비겁한 미봉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를 단순히 밥그릇 싸움이나 ‘세대 간 갈등’이라는 얄팍한 프레임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 이면에는 세대 간 ‘분배적 정의’가 실종되면서 청년 세대가 미래의 비용을 독박 써야 한다는 구조적 불형평성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선을 계기로 폭발한 2030의 공정성 요구는 결코 청년들에게만 국한된 투정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 특히 정치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시장 선거를 돌이켜보자. 선거운동 초기만 해도 여론 조사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압승을 점쳤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뒤집혔다. 이러한 예측 불허의 대역전극을 만들어낸 결정적 동력은 다름 아닌 정부와 여당의 불공정 행태에 실망한 2030 세대의 ‘표심 반란’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소취소 특검법’은 사법 정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현 정부가 취한 일련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 폭등뿐만 아니라 전세까지 사라지게 함으로써 청년들의 주거 여건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았다. 또한, 무분별한 재정확장 정책은 청년들에게 미래의 빚을 떠안기며 형평성을 무참히 깨뜨렸다. 열심히 일해도 내 집 마련조차 할 수 없는 사회, 기성세대의 빚을 갚기 위해 청춘을 저당 잡혀야 하는 구조는 프랭크 교수가 말한 ‘형평’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 청년들이 던지는 준엄한 화두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2030이 외치는 공정성은 한 세대의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라, 무너진 대한민국 공동체의 기본 가치를 복원하라는 시대적 명령이다. 정부는 임기응변식 정책으로 청년들의 눈을 가리려 하지 말고, 공정성 회복과 세대 간 형평성을 보장할 실질적인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공정’이라는 기초가 무너진 사회에 미래는 없다.

장동희 전 주핀란드대사, 전 경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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