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트너 VP 애널리스트 다니엘 쑨 박사. (사진=가트너)
[아이티데일리] “아무리 성능 좋은 AI 도구라도 직원들이 이에 몰입하지 못하거나, 신뢰하지 않거나, 압도당한다고 느낀다면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습니다.”
가트너 VP 애널리스트 다니엘 쑨 박사는 최근 본지(컴퓨터월드/IT DAILY)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생성형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AI 투자 성과를 가로막는 새로운 변수로 직원의 ‘AI 피로감(AI fatigue)’이 부상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존 IT 도입과 다른 AI 피로감…직원 무력감·불안 키운다
가트너는 AI로 인한 업무 환경·역할·프로세스 변화에서 발생하는 직원들의 무관심, 번아웃, 몰입 저하, 좌절감 등을 AI 피로감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AI 피로감을 2028년까지 전 세계 기업의 절반 이상이 AI ROI 달성의 최대 장벽으로 꼽을 것이라는 게 가트너의 전망이다.
가트너가 AI 피로감을 정의한 데는 기존 디지털 전환에서 겪었던 피로감과는 결이 다르다는 판단이 있다. 쑨 박사는 “AI 기반 변화는 속도와 규모가 매우 빠를 뿐 아니라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훨씬 크기 때문에 강도가 다르다”며 “AI 피로감이 초래하는 정서적·심리적 부담은 이전의 기술 변화에서 나타났던 피로감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하다”고 진단했다.
AI가 일터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 자체도 과거 IT 도입 양상과 다르다고 짚었다. 쑨 박사는 “오늘날 직원들이 전례 없이 많은 변화 이니셔티브에 노출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가 AI와 관련됐다”며 “과거의 IT 시스템 도입과 달리 AI는 직무 역할, 의사결정 방식, 나아가 일의 본질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직원 준비도와 AI 도입 속도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지점은 어디일까. 쑨 박사는 “이 격차는 조직이 직원들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AI 도입을 추진할 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충분한 교육 없는 새 AI 도구 도입, 갑작스러운 평가 기준 변경, 동료와의 활용 격차 등이 꼽혔다. 쑨 박사는 “성과 평가에서 갑자기 AI 활용도가 강조되거나 동료들은 AI를 능숙하게 사용하는데 자신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느낄 경우 무력감과 불안감이 커지면서 피로감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로감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기 위한 진단 지표도 화두로 떠올랐다. 쑨 박사는 “가장 먼저 중요하게 봐야 할 지표는 직원의 신뢰와 참여도”라며 “이는 정기적인 펄스 서베이와 개방형 피드백 채널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 도입률이나 사고 발생 건수도 중요한 지표이지만 이러한 지표는 이미 문제가 어느 정도 발생한 이후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며 “신뢰와 참여도에 집중함으로써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 피로감 줄이려면…‘부서 간 협업·실패 공개’ 핵심
대응 전략도 제시됐다. 크게 △AI 변화관리 팀 구축 △맞춤형 AI 리터러시 교육 △투명한 변화 커뮤니케이션 △AI 실패 사례를 다루는 워크숍 등이다. 이 가운데 AI 변화관리 팀 구축의 핵심은 HR·사업부·기술·리더십이 한데 모이는 부서 간 협업 구조로 언급됐다.
쑨 박사는 “부서 간 협업 기반의 AI 변화관리 팀은 HR, 사업부, 기술 부서, 리더십의 관점을 한데 모아 직원 경험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게 한다”며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교육과 커뮤니케이션부터 윤리적 리스크, 심리적 안전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우려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AI 도입을 가속화하는 시점일수록 ‘실패 가능성’과 ‘적용하지 않을 영역’을 함께 공개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쑨 박사는 “워크숍 등을 통해 AI의 잠재적 실패 가능성, 예를 들어 편향, 환각, 오용 등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고 신뢰를 구축하며 직원들이 우려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티전략(antistrategy)’ 개념도 제시됐다. 이는 AI를 어디에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를 사전에 명확히 밝히는 접근법이다. 쑨 박사는 “안티전략은 경계를 설정하고 기대치를 관리하며 AI 활용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것을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AI 진정한 가치는 사람 통해 실현”…인간 중심 접근 필요
국내의 경우 직장과 일상 전반에서 AI 도입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AI 피로감 역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게 쑨 박사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직장, 교육, 일상생활 전반에서 빠른 기술 도입이 이뤄지면서 AI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며 “직원들은 새로운 AI 도구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고용 안정성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피로감 확산은 향후 AI 정책과 제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쑨 박사는 “한국 사회가 AI 통합의 과제를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보다 인간 중심적인 AI 접근법, 명확한 규제 방향성, 정신적 웰빙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에이전트 시대로 접어들면 피로감의 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직원이 AI에 업무를 위임하거나 직접 협업하는 상황이 일상화되기 때문이다.
쑨 박사는 “초기에는 AI가 업무에 더욱 깊이 통합되고 직원들이 AI 에이전트와 협업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피로감이 더 심해질 수 있다”면서도 “체계적인 변화관리, 개인별 상황에 맞춘 학습,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된다면 직원들은 점차 적응하게 되고 피로감도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끝으로 쑨 박사는 조직의 인간 중심적 AI 활용을 제언했다. 이는 AI를 효율성이나 인력 대체의 도구가 아닌 직원의 역량 강화와 성장의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AI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을 통해 실현된다”며 “조직은 커뮤니케이션, 교육, 신뢰의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인간의 경험을 우선시할 때 조직은 AI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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