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편집자주] 서울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학신문 부주간, 교무부처장, 학생처장, 기초교육원장, 인문대학장, 한국연구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중등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국내 대표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천재교육)의 대표저자이며 현재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제2차 세계대전 소재 미국 드라마로 유명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마지막 회에는 어느 독일 장군의 인상 깊은 연설 장면이 나온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로 잡힌 독일군 병사들이 절망에 빠져있는데, 그 장군은 미군의 허락을 얻어 부하들에게 짤막한 고별 연설을 한다. 전우애로 고통을 함께 나누며 끔찍한 전쟁의 매 순간을 견뎌낸 병사들에게 여생을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살아남았으나 더욱 길고 고통스러운 미래를 맞이할 부하이자 동료들에게 담담하게 건네는 그의 위로는, 적군의 패장으로서 하는 말이지만 승자인 미군 병사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총부리를 겨누고 죽기 살기로 싸운 사이지만 비참한 전쟁에 휘말려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는 점에서 서로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인류가 경험한 어떤 변화보다 속도가 빠르고 파괴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SF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 인간의 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점이다. 당연히 인간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인간 없이 작동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보게 됐다. 일반 사무는 물론이고 회계사, 법률가, 의사 같은 전문직의 일도 이미 AI가 대체할 수 있다.
막대한 투자가 집중되는 피지컬 AI의 발전에 따라 조만간 제조 현장에서도 인간의 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심지어 AI를 연구 개발하는 역할도 AI에 넘겨주는 실정이다. 메타, 아마존, MS 등 빅테크 기업들은 매년 개발자를 수만 명씩 해고한다. 장밋빛 미래로 그려지는 AI 시대는 그런 점에서 인간에게 공포스러운 세계대전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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