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신안 국제문페스타 포스터
1801년 12월 우이도 사람 문순득이 홍어를 사기 위해 태사도에 갔다가 폭풍을 만난다. 이듬해 1월 돌아오는 길이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류큐국의 대도 곧 오늘의 아마미오시마 나제시가 있는 북부 해안에 표착한다. 양관촌을 거쳐 류큐의 도읍 나하 박촌으로 옮겨져 약 6개월을 머무른다. 여기서 유구의 말과 풍속을 익힌다.
그해 10월 7일 중국으로 송환되는 류큐 조공선을 탔으나 다시 풍랑을 만나 남쪽으로 떠밀린다. 11월 1일 여송국 곧 지금의 필리핀 루손섬 북부 살로마기에 표착하였고 비간이라는 도시로 이송된다. 그곳에서 스페인 식민도시 비간의 성당(완공 전이었음)과 닭 모양의 풍향계, 포크와 손으로 먹는 식사법, 닭싸움, 목조가옥과 국제무역의 풍경을 조우한다.
거의 10개월 뒤인 1803년 8월 마카오행 상선을 타고 여송국을 떠난다. 마카오에서 3개월가량 머문 뒤 광둥과 난징을 거쳐 베이징에 이른다. 북경에서 다시 몇 달을 기다리다 책문과 의주를 지나 한양에 도착했고 1805년 1월 8일 마침내 우이도로 돌아온다.
두 번의 표류와 한 번의 송환길이 겹쳐진 동아시아 해양항로라고 할 수 있다. 3년 2개월의 표류, 전체 길이는 약 15,000Km에 달한다. 이에 대해서 본지 2018년 2월 1일자 칼럼(76회)에서 ‘하늘 아래 최초의 세계 여행자 문순득’이란 이름으로 자세히 다루었다. 표해시말(漂海始末)은 문순득이 표류에서 돌아와 구술한 내용을 당시 우이도에 귀양 가 있던 손암 정약전이 정리한 자료다. 정약전은 문순득에게 천초(天初)라는 호를 주었다. 하늘 아래 최초의 세계 여행자라는 뜻이다.
이 기록을 우이도 문순득의 손자로부터 처음 발견한 것은 고 최덕원 순천대 총장이다. 이후 목포대 최성환 교수가 집중 연구하여 정약전의 제자 이강회가 가필한 점을 밝히는 등 오늘의 성과에 이르렀다. 당시 류큐는 조선국을 포함 중국 등지와 국제간 송환시스템이 있었다. 나라 간 상업이 활발한 시대였다. 이 내력을 우리나라 대표 마당극패인 목포의 ‘갯돌’이 기획 연출하여 공연한 것이 ‘홍어 장수 문순득 표류기’이다.
갯돌 마당극 ‘문순득 표류기’에서 몬순 네트워크까지
2026 신안국제문 페스타 포스터
2026년에도 변함없이 문순득 국제 프로젝트가 열린다(7월 2~5일, 우이도, 흑산도 일대). 마당극패 갯돌이 오랫동안 연행해온 국제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경기문화재단과 실학박물관에서 함께 하니 의미가 더 크다. 2010년 12월부터 시작한 ‘문순득 표류기’ 공연이 그 중심에 있다. 2015년 오키나와, 2016년 필리핀, 2017년 오키나와 및 마카오, 2018년 마카오, 2019년부터 2026년까지는 신안국제문페스타라는 이름으로 연행해왔다.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아카이브로 시작한 것인데 문순득 표착지 외 말레이시아 등으로 확장해왔으니 동아시아를 아우른 셈이다. 관 주도 행사가 아니라 지역 극단과 민간 예술인, 섬 주민, 연구자들이 16년여 쌓아 온 외교적 성과다. 200여 년 전 민간인 문순득이 국제간 송환 제도를 통해서 자신의 나라로 보내지거나 국제무역을 하던 상선을 타고 글로벌하게 이동하던 내력과 닮았다. 적대적 나라 사이라도 민간교역을 통해서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대표 사례라고나 할까. 동아시아평화에 대한 여러 지평과 담론을 생산해온 극단 갯돌의 빛나는 성과다.
그래서다. 나는 이를 다시 몬순 네트워크로 확장하는 방안에 대해 궁리 중이다.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몬순(monsoon)이라 한다. 몬순은 지구상 여러 지역에 나타난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몬순 아시아라고 한다. 서아프리카 및 아메리카도 포함되는데 북미, 남미 등에서 대규모의 계절풍과 강수량 변화가 뚜렷하게 관측된다.
몬순의 원리는 육지가 바다보다 햇빛에 의해 더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기 때문이다. 바람이 나타나는 위도에 따라 열대 계절풍, 아열대 계절풍, 온대 계절풍 따위로 구분한다. 여름에는 남동/남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고온다습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겨울에는 대륙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건조한 북서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춥고 맑은 날씨가 나타난다. 여름에는 바다에서 대륙으로, 겨울에는 대륙에서 바다로 바람이 분다.
이른바 문순득 항로가 바로 몬순과 연결되어 있으며 물길과 바람길의 동북쪽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바닷길을 통해 연결되었으므로 물길이고 태풍을 통해 연결되었으므로 바람길이다. 즉, 우이도와 태사도가 포함된 흑산도는 변방이 아니라 몬순 해양권의 북방 접속점에 해당한다. 이미 문순득을 통해 역사 네트워크가 마련되어 있으니 이를 철새와 갯벌, 해류 등을 포함한 생태 네트워크로 확장하고 특히 동아시아 평화 네트워크로 구성할 수 있다. 몬순이라는 기후 담론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하고 홍어 장수 문순득의 행로를 확장하여 동아시아 평화로 연결하는 담대한 구상을 할 때가 되었다.
남도인문학팁
전남광주특별시에서 발신하는 몬순아시아 평화프로젝트
극단 갯돌에서 주관하고 (사)세계마당아트진흥회가 함께 하는 신안국제문페스타는 ‘로드-스꼴라’ 프로그램과 연동하여 진행되고 있다. ‘길 위의 학교’라는 뜻이므로 문순득의 경우에는 바다 위의 물길학교라 하겠다.
조선 후기 우이도 홍어 상인 문순득의 3년 2개월 표류와 ‘표해시말’ 기록유산을 바탕으로 섬 답사, 공연예술, 국제교류, 생태 인문학을 결합해 온 민간 해양문화 프로젝트의 모델격이다. 이를 신안 다도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생태 가치, 동아시아 몬순 해양 네트워크의 역사성, 생태평화 교육의 상징성 등을 결합해 ‘문순득 몬순아시아 평화 네트워크’로 확장시키자고 제안한다.
남도의 작은 섬에서 출발해 아시아의 바닷길을 복원하고 몬순의 생태권을 묶으며 최종적으로 한해륙 전체를 평화의 학습장으로 전환하는 문화외교, 생태평화, 민중 인문학 복합 프로젝트가 된다. 이를 위한 핵심 프로그램 패키지를 더불어 제안해둔다. 먼저 문순득 몬순 아틀라스다. 문순득의 귀환 항로와 귀환길을 디지털지도화 한다. 우이도, 흑산도, 아마미오시마, 오키나와, 필리핀 비간, 마카오, 광저우, 난징, 베이징, 의주(조선), 한양, 우이도를 연결하고 각각의 지점에 영상, 구술, 공연, 음식, 언어 자료 등을 얹는다.
문순득 평화통역사 펠로십도 구상한다. 아시아 청년들을 선발해 신안과 일본, 필리핀, 중국을 오가며 민속, 해양사, 통역, 기록, 공연, 생태평화를 배우게 한다. 이미 신안 국제문페스타와 섬 로드스꼴라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연행되었다. 이 노하우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향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의 성과를 담은 백서를 출간하는 일이 긴요하다. 공연 연보, 해외 교류, 참가 예술인, 각국의 주민 구술, 사진, 영상, 포스터, 언론 보도, 정약전과 문순득 연구성과 등을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 등으로 정리하는 일 말이다.
차제에 몬순 네트워크를 공식 출범시키면 일석이조다. 명칭은 문순득 몬순 피스포럼 혹은 몬순아시아포럼으로 확대해도 무방하다.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기후위기와 몬순아시아 지역의 연대, 아시아평화를 위한 전략 등 현안 의제들을 발굴하고 협력한다. 몬순 라운드 테이블, 문순득 예술 항로 레지던시, 섬 청년 통역학교, 철새와 표류민 워크숍 등도 구상한다. 때마침 7월 1일자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발족되었고 주민주권과 공론장이 활성화되는 명실상부한 시민 시대가 열리고 있다.
문순득의 놀라운 행로와 갯돌이 벌인 당찬 프로그램이 이미 민본 중심의 길을 예비해두었다고 할까. 문순득에 기대어 우리가 나아갈 바를 여쭙는 뜻이 여기에 있다. 이제는 통합특별시가 된 남도의 작은 섬에서 출발해 아시아의 바닷길을 열고 몬순아시아 평화는 물론 장차 한해륙의 평화까지 몬순아시아 대동세상을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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