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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영웅 과학칼럼] AI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에게 던지는 허먼 멜빌의 예...

1851년, 허먼 멜빌이 포경선 피쿼드호의 침몰을 통해 세상에 던진 질문은 1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인공지능(AI)...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고 최적의 해답을 제시하며, 때로는 인간의 직관보다 더 정확한...

[이영웅 과학칼럼] AI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에게 던지는 허먼 멜빌의 예...

[한국강사신문 이영웅 칼럼니스트] 1851년, 허먼 멜빌이 포경선 피쿼드호의 침몰을 통해 세상에 던진 질문은 1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선 우리에게 더욱 절박한 실존적 물음으로 다가옵니다. 광기 어린 에이해브 선장이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 고래’ 모비 딕을 쫓아 파멸로 치달았던 서사는, 어쩌면 초지능과 효율성이라는 절대적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현대 기술 문명의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디지털 작살을 손에 쥔 채,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 에이해브의 작살과 알고리즘의 오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에이해브 선장의 외침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알고리즘의 명령입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고 최적의 해답을 제시하며, 때로는 인간의 직관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에이해브의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합니다. 그는 세계를 ‘정복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고, 그 과정에서 선원들의 안전과 윤리,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모두 제물로 바쳤습니다.

현대의 기술 지상주의 역시 이와 닮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효율로 치환하려는 시도는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성’의 영역을 소외시킵니다. 에이해브가 모비 딕이라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았듯, 우리 역시 AI라는 도구에 의사결정의 전권을 넘기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사유’의 근육을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합니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고, 가속도가 방향을 압도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피쿼드호의 갑판 위에서 광기 어린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는 ‘하얀 침묵’의 진실

이슈마엘은 고래의 뼈를 맞추고 기름의 양을 계산하며 고래를 ‘지식’의 범주 안에 가두려 애썼습니다. 소설의 상당 부분은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적 기록으로 채워지지만, 그는 결국 고백합니다. 고래의 본질은 그 어떤 과학적 분류나 세밀한 해부로도 환원되지 않는 ‘하얀 침묵’ 속에 있다고요. 이것은 오늘날 모든 것을 라벨링하고 예측하려는 AI 인식론에 대한 뼈아픈 경고입니다.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조합해 최선의 평균치를 내놓지만,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 ‘평균’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합니다. 슬픔 속에서도 피어나는 유머, 패배가 예정된 싸움에 기꺼이 뛰어드는 용기, 그리고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타자를 향한 헌신은 데이터의 격자무늬 속에 결코 박제되지 않습니다. 멜빌이 묘사한 백경의 하얀색이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잠재된 심연’이듯,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무작위성이야말로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존엄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개 효율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그 지점에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 파국을 막는 유일한 부표, ‘이슈마엘의 시선’

피쿼드호의 모든 광기가 바닷속으로 침몰할 때, 오직 이슈마엘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승리자가 아니라 ‘목격자’이자 ‘기록자’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를 살린 것이 세련된 항해 기술이나 튼튼한 배가 아니라, 친구 퀴퀘그가 자신의 죽음을 대비해 만든 투박한 ‘나무 관(棺)’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을 기억하고 타자의 상실에 공감하며, 이질적인 존재와 맺었던 우정의 증표가 역설적으로 그를 삶으로 건져 올린 부표가 된 것입니다.

AI 시대에 우리가 유지해야 할 중심 역시 바로 이 ‘이슈마엘의 시선’에 있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더욱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특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AI가 정답을 내놓을 때 그 답이 초래할 사회적 통증을 고민하는 것, 기계가 계산하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닦는 것, 그리고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지는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것이야말로 ‘디지털 피쿼드호’의 침몰을 막을 유일한 브레이크입니다. 정답보다는 질문하는 능력을, 최적화보다는 공감의 태도를, 그리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찰하는 힘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부표입니다.

△ 맺으며: 기록하는 인간의 위대함

벗님들, 그리고 동료 인간여러분!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에이해브의 작살을 들고 맹목적인 기술의 심연으로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이슈마엘처럼 겸손하게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인간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 기술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약속할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서 '생각할 권리'를 빼앗아가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위로는, 어떤 문명적 침몰 속에서도 삶을 성찰하고 이야기로 남기는 자가 있다면 인류의 항해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는 이 시대, 우리가 갖춰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최신 사양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타자와 연대하고 ‘알 수 없음’의 신비 앞에 겸손할 줄 아는 인간다운 마음입니다. 에이해브의 작살을 내려놓고 이슈마엘의 펜을 드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진정한 항해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우리가 쫓는 ‘모비 딕’은 언제든 우리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슈마엘처럼 서로의 관을 부표 삼아 의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디지털의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항해를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술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장 역설적이고도 위대한 인간의 길입니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이영웅 칼럼니스트는 세종과학기술연구원(SIST) 이사, 시니어과학기술인협회(KASSE) 강사, 과학기술연합연우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천문학 학·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메사츄세츠대학교에서 전파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천문연구원 대덕전파천문대에서 책임연구원 및 대덕전파천문대장을 역임했다. 충남대학교 천문우주학과 겸임교수, UST 천문우주학과 전임교원,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기술앰배서더,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연구소 초빙연구원과 객원연구원, 민족사관고등학교 천문·물리·과학융합 강사 등으로도 활동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번역하신 은사 홍승수교수님의 권유로 대중과학강연을 시작했고 지난 30년 동안 700회 이상의 강연을 했다.

주요 강의 분야는 ‘천문우주’의 전 분야, ‘융합과학’, ‘우주환경’, ‘효율적인 공부방법(AI와 함께 따뜻한 두뇌)’, ‘과학건강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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