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 사이에 농담처럼 회자하는 말이 있다. 악법도 법이고 위선도 선이다, 라는 말이 그것이다. 말장난같지만 우스개 소리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선이 뜻하는 바는 먼저 하얀 거짓말과 같은 사회성을 뜻하는 경우이다. 당당한 무례함보다는 차라리 위선이 낫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상대의 행동이 가식적이더라도 솔직하고 무례한 표현으로 불쾌감을 주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리다. 이러한 논리와 궤를 같이 하는 비슷한 말로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라”, “다정하다는 것은 지능이 높다는 증거이다”가 있다. 이러한 말들은 개인의 자기 표현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우월한 가치임을 강조한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위선이 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행해진 일이더라도 공익적인 행동이 실천되었다면 선한 행위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미지 관리라는 목적을 가지고 기부, 봉사,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 등을 하는 정치인, 연예인들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공인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위선이 선이라는 말도 일견 이해가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말에 완전히 수긍할 수 없는 이유는, 대중이 어떤 행위가 선한지 악한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에 따라, 위선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라도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한다면 도덕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효용과 다수의 호감은 엄연히 다르다. 대중이 자신의 이해관계나 집단 정서에 휩쓸려 어떤 행동을 선으로 추켜세우거나 지나치게 악으로 단죄한다면 이는 도덕적 기준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타의 모범으로 보였던 유명인들의 위선적 행태가 드러났을 때 대중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슴지 않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예를 들어, 청렴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의 자녀가 병역이나 입시 특혜를 받았다고 하면 해당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한 연예인은 난민 인권에 대한 옹호를 했다가 이후 혼외자 스캔들이 터지자 이중성에 대한 괘씸죄로 극심한 비판을 받았다. 한편 얼마 전에는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겠다고 공언해온 유명 유튜버가 사회복무요원에게 갑질을 했다고 알려져, 이에 대한 거센 비난과 함께 과거의 행적들이 일일이 재조명되며 그의 위선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물론 무례한 개인들과 위선이 드러난 공인들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대중들이 절대적이지도 않은 도덕적 정당성을 휘두르며 타인에 대한 평가 규범을 만드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우려되는 점이 있다. 온라인에서부터 시작된 규범이 실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스마트폰 속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배려하는 방법을 숙지했지만, 그러다보니 오히려 타인과 소통을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5년 생성형 AI 이용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생성형 AI가 감정적 위로를 제공하고 친구처럼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게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자료만으로 AI가 인간관계를 대체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인의 평가와 반응을 감당해야 하는 인간관계 대신, 언제든 대화할 수 있는 AI를 정서적 소통의 상대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무엇이 무례하고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을 끊임없이 외부의 시선에 맡기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인가 위축되고 인간 관계에 소극적이 되다가 사람과의 소통 능력이 더 약화될지도 모른다. 일정 수준의 위선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되,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기준과 결단력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임마리 NGO활동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