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사유思惟, 그리고 하루’전
군산 이당미술관에서 이호철 조각가의 ‘사유思惟, 그리고 하루’라는 조각 전시회가 오는 14까지 열리고 있다. 제목은 고도의 철학적 의미를 지니는 용어이다.
부제는 더욱 문학적 요소마저 가미해 ‘저문 자리에서 다시 번지는 빛’이다.
이를 두고 이당미술관 학예사 김미량은 “전시 제목에 놓인 ‘사유’란 삶의 의미를 묻는 행위이자 무심히 흘러 보낸 하루를 다시 붙드는 태도”라고 아주 적절하고 간단명료하게 풀이 했다.
원래 사유란 믿음의 종교라기보다는 의심의 종교라 알려진 불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언어로 단순히 생각하는 것을 넘어, 그 생각마저 의심하여 다시 살피는 진리를 관찰하고 판단하는 수행과정에서 표출되어지는 단어이다.
작품들은 더 절박하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간에 만물은 숨을 쉬고 산다. 다만 조건만 다를 뿐이다.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숨을 쉬며 편안해질 수 있는 물속은, 허파를 통해 숨을 쉬어야 하는 호흡기 동물에게는 곧 죽음이다.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인간들만은 숨을 쉴 수 있는 기구를 통하여 물속에서도 허용된 시간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그중 가장 원초적인 것이 지상과 공기를 연결하는 머구리의 착용일 것이다. 머구리는 최소한의 공기로 최소한의 행동과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지상과 연결하는 장치이다. 가느다란 호스를 통하여 최소한의 들숨과 날숨만을 허용한다.
과연 그는 머구리의 형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가? 그것은 절박함이다. 그의 옛 작품전을 보면 아주 사실적인 조각으로 현실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점이 이동됐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삶의 문제로, 넓지만 공허한 대상에서 좁지만 깊어서 더 넓어지는 아이러니한 곳으로의 이동이다.
이것은 인간의 성숙도와 비례하는 것 같다. 아마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SOS를 보내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또 놓인 빈 의자들 속에 하나의 의자만 선별해서 앉아있는 인물상에서도 그 외로운 절박함은 배가된다. 그는 지금 이 전시회에서 강력하게 자신의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기능적으로 흠잡을 수 없는 작품들이기에 더욱 그런 의도가 드러난다.
언젠가 말했듯 외로움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외로움은 소통을 갈구하지만 왠지 소통이 막혀버린 괴로움이다. 이런 현상의 이유는 밖일 수도 있고 안일 수도 있다.
깊은 사유 속에서 안과 밖을 헤아리고 고통이 없는 진정한 고독으로 환원해나가기를 바랄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고독으로 발전해나가는 길이 ‘저문 자리에 다시 번지는 빛’이 되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