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금융회사가 개인·퇴직연금 가입자를 대상으로 타깃데이트펀드(TDF) 상품 설계를 추진한 건 올해 초부터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노후 자산관리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목표연도에 가까워질수록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낮추는 ‘글라이드 패스’를 적용하기로 했다.
TDF에 담을 상장지수펀드(ETF)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고민거리가 생겼다. 국내 주식형 ETF의 매매 차익엔 비과세 혜택을 주는데, 연금에 담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추가 혜택을 줘도 모자랄 판에 불이익이라니….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출시 계획을 백지화했다.
2002년 첫선을 보인 국내 ETF 시장은 올해 24년째를 맞았다. 순자산총액은 상반기 500조원을 넘어섰고, 상장 종목은 1170여 개에 달한다. 단순한 투자 상품을 넘어 자산관리 시장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은 더하다. 순자산이 한국보다 약 50배 많은 건 물론 하루 거래량의 절반 가까이를 ETF가 차지한다. 퇴직연금(401k)을 포함해 대부분의 장기 투자 계좌가 S&P500지수 등을 추종하는 ETF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주류로 부상한 ETF 시장에서 유독 국내 주식형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하소연이다.
뜯어보면 이렇다. 국내 주식을 60% 이상 담은 주식형 ETF는 일반계좌에서 매매한 뒤 수익이 생겨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소득세법 94조에 대주주 양도, 비상장 거래 등 특별한 경우만 과세 대상으로 적시돼 있어서다.
똑같은 국내 주식형 ETF를 개인·퇴직연금에 담으면 완전히 달라진다. 연금을 수령할 때마다 3.3~5.5%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 나이에 따른 차등이 있을 뿐 예외가 없다. 기본적으로 비과세 대상인 국내 주식형 ETF가 연금 계좌에 담길 때 과세 상품으로 둔갑한다는 얘기다.
해외 주식형을 거래할 땐 어떨까. 국내 증시에 상장된 해외 주식형 ETF를 일반 계좌에서 매매하면 배당소득세(15.4%)를 내야 한다. 해외에 상장된 ETF라면 양도소득세(22%)를 부담한다. 같은 해외 상품을 연금에 담으면 세금 내는 시점을 늦춰주는 과세이연과 함께 저율과세(최고 5.5%)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반 계좌 대신 연금 투자 때 훨씬 유리해지는 구조다. 전문가들이 “개인·퇴직연금 계좌에선 국내 주식형은 쳐다보지 말고 해외 ETF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퇴직연금 내 국내 주식형 ETF 비중은 전체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국내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해외 상품에 대한 유인이 강력하다는 방증이다.
국내 주식형 ETF에 대한 ‘연금 역차별’은 지난해 초 세제 개편 과정에서 해소될 뻔했다. 금융투자소득세 신설이란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다. 국내 주식 및 ETF를 대상으로 금투세가 도입됐다면 연금의 이점(과세이연, 저율 과세)이 상대적으로 부각됐을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당분간 금투세 도입이 재논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 상황에서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연금에 담는 국내 주식형 ETF를 일반 계좌와 똑같이 과세 대상에서 빼주면 된다. 초장기 투자자에게 국내 주식 투자에 대한 추가 혜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이익은 주지 않는 조치다.
개인·퇴직연금 시장은 10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지금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연금 자산의 국내 유턴이야말로 정부와 기업 모두 환영할 만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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