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AI센터장
시장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쇳덩어리에 취해 있다. 월스트리트가 엔비디아의 칩과 데이터센터의 굉음에 열광하는 사이, 진짜 지각변동은 소리 없는 심연에서 시작됐다. 최근 구글의 위상기하학 연산이 AI 추론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 것은 단순한 연산의 진보가 아니다. 무수한 AI 에이전트가 협업하는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MAS)이 범용화되는 변곡점이다.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의 시가총액이 증발하고, 과금 모델이 ‘좌석’ 단위에서 ‘성과’ 단위로 무너져 내리는 이른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의 서막이 올랐다.
이 거대한 전복의 수혜자는 실리콘밸리의 자본가가 아니라, 세계 변혁을 꿈꾸던 실천적 인문학자들이다. 과거 이들의 웅장한 사유는 텍스트라는 평면에 갇혀 있었으나, 이제 무한한 ‘AI 에이전트’를 거느리게 됨으로써 철학은 소프트웨어라는 육체를 얻었다. 인문학자들은 코딩의 장벽을 넘어 시대의 모순을 조율하는 새로운 생산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21세기 생산수단은 거대한 공장이나 파이썬 같은 기계어가 아니다. 무한한 AI 노동력을 지휘하는 권력, 즉 ‘자연어 기반의 의도와 서사’로 생산수단이 완전히 이동했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왜 필요한가, 어떤 철학을 담을 것인가”를 정의하는 자가 새로운 비대칭 전력의 지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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