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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명희의 인사이트] 보라색 책가방에 담긴 함의

인공지능(AI) 시대의 전쟁은 재래전보다 더 치명적이고 파괴적이다. 첨단 요격미사일과 드론을 장착하고 롤플레잉 게임 하듯 전쟁을 불사한다. AI가 위성 영상과 드론 정찰 데이터, 수십 년 치 정보 기록을 분석해 표적을...

[이명희의 인사이트] 보라색 책가방에 담긴 함의

교만과 선민의식이 촉발한 전쟁 생명 존엄함이 무뎌지고 있어

마두로 체포와 이란 전쟁은 미국 지성의 종말이라는 비판

지구촌 휘젓는 트럼프 리스크 우리도 안전지대가 아닐 것

며칠 전 튀르키예 벨렉의 축구장에 보라색 책가방들이 등장했다. 이란 축구대표팀이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국가 연주 도중 검은 완장을 차고 보라색 책가방을 손에 든 채 침묵시위를 벌인 것. 지난 1일 미군의 폭격으로 숨진 이란 남부 미나브의 샤자레 타예베 여자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 학교 어린이와 교사 등 175명이 숨졌다. 이란은 월드컵 출전도 불투명해졌다.

이란 전쟁 한 달이 지나면서 사상자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인권단체 HRANA는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민간인 사망자가 1551명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는 어린이 236명도 포함돼 있다. 지구촌 전쟁이 일상화되다 보니 생명의 존엄함에 전 세계가 무뎌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전쟁은 재래전보다 더 치명적이고 파괴적이다. 첨단 요격미사일과 드론을 장착하고 롤플레잉 게임 하듯 전쟁을 불사한다. AI가 위성 영상과 드론 정찰 데이터, 수십 년 치 정보 기록을 분석해 표적을 식별하고 드론이 타격한다. 인간은 최종 승인 버튼을 누른다. 도시는 화염에 휩싸이고 쑥대밭이 됐다. 일상은 파괴되고 삶의 터전은 무너졌다. 숫자로 치환되는 희생자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슬픔을 오롯이 마주하지 못한 채 하루에도 수백 번 공습에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 나만 옳다는 오만, 우리 민족이 가장 우수하고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는 선민의식이 전쟁을 촉발했다. 영국의 대문호 C S 루이스의 말처럼 교만이 가장 궁극적인 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친 사람들이 핵무기를 가지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며 세계의 평화사도임을 자임한다. 그러면서 이란 전쟁이 이란의 수뇌부를 제거해 정권교체를 이루고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한 사전적 공습이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헤즈볼라나 하마스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들을 상대로 대리전을 치르다가 지난해 6월 ‘12일 전쟁’에 이어 이번에도 직접 이란을 타격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치적 위기에 놓인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야합이 빚어낸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관세정책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지지율이 30%대로 곤두박질친 상태에서 11월 중간선거를 치러야 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3월 말 예산안 불통과에 따른 내각 붕괴 위기와 실각할 경우 개인 비리로 사법처리될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개인의 정치적 야심과 오만이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육군 정예 부대를 보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기습적으로 체포한 것도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누가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가. 아무리 악한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최강국이라 하더라도 무슨 권리로 일국의 대통령을 심판하고 구금할 수 있는가. “행운을 빌며,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상황실에서 마두로 체포 작전 승인 명령을 내리고 참모들과 실시간으로 작전 상황을 지켜보면서 트럼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신 키보드를 눌러대며 전쟁놀이를 일삼는 깡패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합리적이고 지성적이라 여겼던 선진국 미국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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