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주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까지 품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1년여가 지난 지금 국민은 묻는다. 과연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대한민국 정치가 심상치 않다. 검찰·사법제도 개편에서 개헌, 부동산, 노동정책, 대북·외교안보까지 국가의 기본 틀을 건드리는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견제해야 할 제1야당 국민의힘은 내부 권력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폭발력이 큰 것은 개헌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주호영 등 야당 중진들과의 골프 회동에서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통령 4년 중임 또는 연임제 개헌이 일관된 입장이라고 직접 밝혔다.
개헌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1987년 체제가 4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반복됐다는 데는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 문제는 신뢰다. 현행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곧바로 ‘이재명 연임 개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 주변에서 연임 가능성을 둘러싼 발언이 이어지고 야권의 의혹이 커진다면 대통령이 직접 논란을 끝내면 된다.
자신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면 국민 앞에서 자신은 개헌의 수혜자가 되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임기 단축 여부와 개헌 로드맵을 밝히면 된다. 국가의 헌법을 바꾸는 문제는 골프장 사석의 전언이 아니라 국민 앞의 약속으로 시작돼야 한다.
문제는 개헌뿐이 아니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체제로의 전환, 보완수사권 문제 등 사법·수사체계가 크게 바뀌고 있다. 부동산 세제 개편을 둘러싼 혼선도 커지고 있다. 노동 분야에서는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예상되고, 대북정책에서는 ‘선비핵화’보다 평화체제 구축에 무게를 두는 새로운 접근이 진행되고 있다.
한두 개 정책의 변화가 아니다. 권력구조와 사법체계, 시장경제와 노사관계, 남북관계의 틀을 동시에 바꾸는 거대한 판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 못지않게 야당의 책임이 중요하다.
민심에서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17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43.0%로 5주 연속 하락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부정평가는 54.1%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제1야당이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은 47.9%, 국민의힘은 33.1%였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야당은 반사이익을 얻기는커녕 하락했다. 특히 국민의힘의 전통적 기반인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이 크게 흔들렸다.
왜 이런가. 국민은 정부에 실망한다고 무조건 야당을 선택하지 않는다. “저 당에 나라를 맡겨도 되는가”를 함께 묻는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정부의 거대한 정책 변화와 맞서기보다 당대표 책임론과 계파 갈등, 내부 인사 공격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싸워야 할 상대와 싸우지 않고 자기편끼리 싸우는 정당에 어떻게 국가 운영을 맡기겠는가.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전투력 있는 정책야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개헌에는 자체 권력구조 개편안을 내놓아야 한다. 사법개혁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과 법원을 독립시킬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동산에는 세금 비판을 넘어 공급·금융·청년주거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북정책에는 평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핵 억제와 평화를 함께 달성할 현실적인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등 참정권과 선거관리 문제 역시 확인된 사실과 제도 개선안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집요하게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내부총질부터 멈춰야 한다. 지도부의 잘못은 비판하되 당의 에너지는 정부 견제와 정책 경쟁에 집중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대한민국의 여러 제도를 동시에 바꾸려 하고 있다. 옳은 개혁은 협력하고 잘못된 정책은 막으며 더 좋은 대안을 내놓는 것이 야당의 존재 이유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데 야당 지지율까지 떨어지는 현실보다 더 무서운 경고가 어디 있는가.
정부가 강해서 야당이 약한 것이 아니다. 야당이 스스로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강해지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재명 대통령도 민주당도 아니다. 정부에 실망하면서도 제1야당에는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국민의 냉소다. 지금 싸워야 할 곳은 당 안이 아니라 국회이고, 싸워야 할 대상은 동지가 아니라 잘못된 정책이다.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계파의 전투력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맡을 수 있는 정당의 실력이다.
윤덕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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