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주필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무적함대’ 스페인의 우승과 아르헨티나의 준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화려한 결승전 못지않게 강렬한 감동을 남긴 팀은 인구 52만 명의 대서양 섬나라 카보베르데였다. 조별리그에서 우승국 스페인과 비기고, 32강전에서는 준우승국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연장 혈투 끝에 2대3으로 석패했다. 그들의 축구는 단순한 돌풍이 아니었다. 체급의 한계를 조직력과 투지, 과감한 공격으로 돌파한 생존의 드라마였다.
카보베르데의 야성을 보며 대한민국 제1야당 국민의힘을 바라보면 분노를 넘어 참담함이 밀려온다.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가 계속되는데도 정국 주도권을 통째로 내준 채 내부 권력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덩치만 클 뿐 싸울 의지도, 이길 전략도 없는 허수아비 야당이다. 불의 앞에서는 뒷걸음질 치고 위기가 닥치면 제 밥그릇부터 챙기는 정당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이재명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원하는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간과 인력을 늘리는 1·2차 합계 690일짜리 ‘인디언 기우제식’ 종합특검 연장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370억 원이 넘는 혈세를 쏟아붓는, 법의 외피를 쓴 국가폭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시도와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참정권 훼손 논란도 결코 가볍지 않다.
경제는 더욱 심각하다. 졸속 도입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시장을 카지노판으로 만들었다. ‘웩더독’ 현상 속에 올해 사이드카가 35차례나 발동됐고 하루 반대매매 청산 규모는 1천400억 원대로 치솟았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부동산 가격 급등까지 겹치며 서민과 개미 투자자들의 신음이 커지고 있다.
정권을 뒤흔들고도 남을 악재가 지천인데 국민의힘은 아젠다 하나 선점하지 못한다. 장동혁 대표 거취 논쟁과 계파 간 징계 내전으로 밤을 새우며 제 살을 뜯고 있다. 오직 법사위원장 자리에만 매달려 원 구성마저 팽개치는 모습은 무능의 극치다.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더 보기 싫다”는 보수층의 절규는 괜한 분노가 아니다. 싸움다운 싸움은 피하면서 당권과 공천권을 놓고 벌이는 내부총질에만 맹수가 되는 정당을 누가 존중하겠는가.
국민의힘의 고질병은 공천 실패와 인물 쇄신의 부재다. 민주당은 거친 정치판에서 단련된 전투력 있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선 36세 김보미 전 전남 강진군의회 의장은 “화염병과 짱돌을 들던 세대가 아직도 주축이어야 하느냐”며 86세대 기득권을 면전에서 비판했다. 당내 강성 지지층의 고성과 반발에도 물러서지 않고, 기탁금 1억 원을 마련하려 발로 뛰며 혁신을 외치는 청년 정치인이 민주당에는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온실에서 자란 고위 관료와 법조인, 영혼 없는 책상물림을 반복해서 공천해 왔다. 이들은 당선되고 나면 국민보다 자신의 안위와 다음 공천부터 걱정한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정권 독주에 맞서는 무기가 아니라 제 몸을 숨기는 방패로 전락했다. 희생은 없고 계산만 있으며, 신념은 없고 눈치만 남았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야당의 전사가 될 수 있겠는가.
특히 대구·경북 정치권은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지역민들이 보수의 보루를 지키겠다며 압도적인 표를 몰아줬다면 투쟁력과 성과로 보답해야 한다. 그러나 TK 의원들은 해마다 보여주기식 당정협의회만 반복할 뿐 중앙 정치에서 존재감조차 없다. 정부가 대규모 ‘호남 반도체’ 계획과 광주 군공항 부지 지원책을 내놓는 동안 대구·경북 통합특별법은 무산됐고, 대기업 유치와 주요 현안 사업 국비 확보에서도 밀려났다. 지역 권리를 지키라고 뽑아놓았더니 서울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지역에서는 공천장을 휘두르는 골목대장 행세만 한다. 이것이 TK 정치의 처참한 현주소다.
국민의힘은 “힘없는 소수 야당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비겁한 패배주의부터 폐기해야 한다. 과거 민주당은 소수 야당일 때도 집요한 투쟁력과 결집력으로 정국을 흔들었다. 의석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용기와 전략, 헌신이 없는 것이 문제다.
카보베르데는 9개 유인도마다 자체 리그를 구축한 탄탄한 시스템과 상대가 누구든 라인을 끌어올리는 공격 축구로 기적을 만들었다. 국민의힘도 특정 인물 한 명에게 매달리는 ‘메시아 대망론’과 선거 때마다 급조되는 모래성 조직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의 철학과 정책, 인재 육성 체계를 갖춘 소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여당이 만든 프레임 안에서 변명만 늘어놓는 ‘늪지대 수비 정치’를 끝내고, 민생 의제와 국가 비전을 선점하는 공격적 야당이 되어야 한다.
카보베르데 선수단은 대회를 마치며 “우리는 머리를 높이 들고 당당하게 떠난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 정치인 가운데 패배한 뒤에도 머리를 들 자격이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국민의힘과 TK 의원들은 따뜻한 온실에서 당장 걸어 나오라.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권의 독주와 최전선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보수 지지층의 인내도 끝난다. 지역민의 맹목적 사랑을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는 순간, 당신들이 설 자리는 대서양의 포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윤덕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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