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르타트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시니어 디렉터가 지난 10월 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 라운드테이블'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혁신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혁신적·혁명적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집단이 항상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통합미디어법을 제정하는 일이 혁신적이라고 불리게 됐을까. 미디어와 관련된 기술의 발전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른데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는 관련 법률은 수십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법률은 항상 양면성을 갖고 있다. 국가는 법률의 제·개정을 통해 국민을 위험과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도 갖고 있다.
반면 동전의 양면처럼 국민의 생활과 삶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집단과 기득권이 있다면 그 이익을 약화시키고 제어하는 일도 해야 한다. 국가와 정치권이 변화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방치하면서, 그 현실에 맞는 법률 제·개정의 책임을 미루고 있다면 능력과 의무 측면에서 낙제점일 것이다. 아니면 기존 기득권 집단임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미디어는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그 위상과 역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디어가 국민의 삶과 생활 그 자체가 된지 오래다. 소통 창구로서 상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치유의 창구로서 수행하는 역할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 국가의 방송 관리, 지배자 이익 숨겨
뉴스, 드라마, 영화, 쇼, 스포츠 중계, 연예·오락 등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생활 영역이다. 아마도 현대인에게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거나 국가의 미디어에 대한 통제가 강력해진다면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지구상 일부 전체주의 국가와 달리 미디어를 국가가 일괄 소유하거나 국가기구의 일부로 통제·관리하지 않는다. 국가가 방송을 관리하는 경우에는 공영성·공공성이라는 명분으로 통제한다. 일명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통제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사적 이익, 지배자들의 이익이 감춰져 있다.
1970~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한국에서도 미디어에 대한 통제는 일사불란했다. 일명 언론 장악이었다. 미디어 산업에 대한 통제도 국가의 주요 역할 중 하나였다. 방송 산업을 국가가 관리·장악해야 언론에 대한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국가는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정치 권력의 위세와 관료 집단의 힘으로, 또 재벌과의 연합을 통해 언론을 직·간접적으로 통제했다.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여론몰이와 정권의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미디어를 활용해 왔다. 또 소비자의 시청 다양성과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미디어 사업을 허용하면서도 선택적 통제를 해왔다. 방송은 놓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끝까지 움켜쥐어야 하는 관리·통제의 대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발전하고 확산되는 기술과 미디어 산업의 변화는 국가의 통제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미디어의 특성 때문이었다. 결국 거대 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미디어의 공세 앞에 국내 방송법 체계는 무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문을 해외 자본에 닫을 수는 없었다. 결국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엑스(X·옛 트위터) 등의 글로벌 기업은 국내 유통업계와 콘텐츠업계, 광고 시장 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내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정부는 사실상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가 됐다. 이들에게 방송법에 준하는 관리·통제의 칼을 들이대면 통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겁이 덜컥 났다.
◇ 글로벌 자본 앞서 침묵
국가는 국내 미디어업계 만큼은 자신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게 했다. 글로벌 자본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말이다. 또 국내 시청자들은 글로벌 자본의 플랫폼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콘텐츠의 홍수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경쟁력에서 열세에 놓인 국내 미디어 기업들이 글로벌 OTT에 투항하며 종속되는 사례도 늘어났다.
예를 들어 지상파 방송사인 SBS가 생존 전략으로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시청자들은 굳이 SBS를 시청하지 않아도 넷플릭스를 통해 편한 시간에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지상파의 인기 드라마나 과거에 방송됐던 드라마 등은 넷플릭스에 가입해 월정액만 내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는 국내 콘텐츠업계에도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유명 배우, 감독, 작가들을 캐스팅하면서 국내 콘텐츠 시장을 장악했다. 자연스럽게 광고도 그들에게 따라갔다. 수익은 해외로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국내 미디어업계가 글로벌 자본과 경쟁할 수 있도록 방송법에 따른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해도 국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글로벌 OTT가 취사 선택한 콘텐츠만 시청하게 되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로 전락했다.
반면 글로벌 OTT와의 경쟁 대열에 명함조차 제대로 내밀지 못하는 국내 지상파와 유료방송업계는 공영방송에 준하는 방송법의 틀과 규제 아래 무력해졌다. 유료방송은 엄연히 상업적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연장으로 해석해 방송법의 틀 속에 가둬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요금도 마음대로 인상하거나 인하할 수 없었고, 마케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이용약관 역시 관련 부처의 엄격하고 지루한 심사를 받아야 했다. 재허가 제도는 국가에는 칼이었고, 미디어업계에는 무릎 꿇고 눈치만 보게 만드는 통제의 도구이자 수단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공공성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유료방송은 엄연히 민간의 상업적 영역인데, 마치 공영방송의 연장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 이득인가.
창발성이 지배해야 하는 미디어 산업계에 경직된 규제와 역차별이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전체 재원은 줄어들고 법과 제도가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민간 영역의 다양한 업체들은 한정된 재원을 놓고 서로 물어뜯고 할퀴는 이해관계의 정글을 형성하고 있다. 함께 망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 압박에 밀려서인지 다행히 관련 부처에서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통합미디어법을 제대로 제정하겠다고 한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어디선가 막혀 있고 누군가 한마디만 해도 진전되기 어렵다고 한다. 정말 제정된다면 혁신이요, 혁명일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용화 한국IPTV방송협회 회장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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