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1기 출범을 맞이해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함께하는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지난달 19일 이재명 대통령은 첫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 이후 개최한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고용유연성을 확보하는 대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동계는 고용유연성을 양보하고 경영계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타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토론회에서는 실제 한국의 노동시장 고용 경직성이 강하지 않고, 신뢰 구축이 먼저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해고가 죽음이 아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가면서 고용유연성을 높이자는 취지였지만, 1998년 뼈에 사무치도록 아팠던 대규모 정리해고를 경험했고 이후 많은 이가 여전히 실업으로 고통받는 실정이다. 노동계의 반대는 즉각적이었고, 경영계는 비용 분담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제안한 화두는 아마도 덴마크를 필두로 한 유럽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다. 기존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LMP)과 결합하여 제시된 유연안정성은, 고용유연성과 사회보장을 함께 묶어 실업 등의 위험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부담하도록 하고 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해고를 쉽게 하자는 것이다. 실업이 위험이 아닌 일자리 전환 과정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그 역량을 높이자는 취지도 있다.
유연안정성 정책의 대표 주자이자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투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덴마크는 높은 고용률과 낮은 실업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한다. 또 장기 실업이 억제되고 노동시장의 이동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팬데믹 이후의 노동시장 충격 역시 줄일 수 있었고, 소득안정성이 높아지면서 노동 빈곤도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회복 탄력성이 높아진 셈이다. 다만 이를 위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고 정책의 효과가 일부 집단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유연안정성의 도입이 노동자의 소득안정성은 물론 일과 삶의 균형을 강화하고, 고용 불안을 줄여 건강에 긍정적 효과도 가져오는 등 건강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다. 실제로 2008년 유럽의 경제위기 이후 자살률 상승 추세에 사회보장 수준이 완충제 구실을 했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사회안전망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자살률 억지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업급여의 소득 대체율이 높아지고 직업훈련, 재교육, 공공 일자리 등 정책이 강화되면 실업과 자살의 연관성이 약해지고 자살의 증가폭을 줄인다는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23개 국가를 비교한 결과 유연안정성이 강한 국가여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건강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재까지 유연안정성 정책은 취약집단에선 효과가 크지 않아 건강 불평등 감소는 불명확하다는 게 비교적 일관된 결론이다. 실제 금융위기 이후 일부 남유럽 국가 연구에선 사회안전망 강화가 유연성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자살률이 단기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보고되기도 했다.
고용 형태, 소득, 사회보장, 노동권과 협상력에 따라 천차만별인 복합적 고용불안정성(precarious employment)은 그 자체로 건강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저학력·저숙련·고령 노동자는 고용유연성 확대에 따른 건강 피해가 집중되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접근성도 낮다. 즉 안전망이 보편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연성의 확대는 건강 불평등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으며, 취약집단이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게 하는 효과도 낮다.
유연안정성 정책은 실업으로 인한 노동자 건강 악화에 일부 완충 효과가 있을 수는 있다. 또 실직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줄여주고, 실업으로 인한 자살,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 등을 일부 완화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완화 효과는 복합적 고용불안정성이 초래하는 건강 악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한 구조적 산업혁명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시기, 우리가 취약집단의 복합적 고용불안정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꾸준하고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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