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법 통과에도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 난항
미국 대비 턱없이 적은 보조금이 핵심 걸림돌
고질적인 전문인력 부족, 생산기지 구축 '발목'
공급망 자급자족 불투명...산업 위기감 고조
TSMC 대만 사옥.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AP, 뉴시스
[초이스경제 김지영 기자] 유럽연합(EU)이 야심 차게 추진해 온 '반도체 자립' 계획이 보조금 경쟁력 저하와 심각한 인력난이라는 이중고를 만나며 중대한 기로에 섰다. 유럽판 반도체법(EU Chips Act)이 정식 발효했음에도,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기대만큼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8일(현지시간) 이같이 전하면서 "유럽이 제시한 지원책은 미국이 '칩스법(Chips Act)'을 통해 쏟아붓는 막대한 보조금 규모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더 큰 재정적 혜택을 제공하는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들로 눈을 돌리며 유럽 내 투자 결정을 망설이고 있다.
유럽은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현재 상황으로는 달성이 불투명하다. 단순히 자금 문제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을 가동할 숙련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유럽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첨단 공정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엔지니어와 현장 기술 인력의 부재는 공장 설립 속도를 늦추고 운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유럽 내 교육 시스템이 반도체 산업의 급격한 수요 팽창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인력 수급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높은 인건비와 경직된 노동 시장 구조 역시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반도체 공급망의 자급자족을 통해 경제 안보를 강화하려던 유럽의 구상은 시작부터 강력한 현실적 제약에 부딪힌 셈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지연됨에 따라 유럽 내 자동차 및 첨단 IT 산업의 공급망 불안정성도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이 보조금 액수에서 미국과 정면 대결하기보다는 유럽만의 특화한 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당장 실행 가능한 재정적 유인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자산이라는 점에서 이번 투자 유치 난항은 유럽의 정치적 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텔이나 TSMC 같은 거대 기업들의 유럽 내 공장 건설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경우 전체 산업 생태계가 위축될 위험이 크다.
현재 유럽의 반도체 정책은 목표만 비대할 뿐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실행 동력이 고갈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조금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다면 유럽은 결국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인력난 해결을 위한 단기적인 이민 정책 변화나 교육 혁신도 산업 현장의 속도를 맞추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2030년 점유율 목표치 달성은 커녕 기존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같은 위기는 자본과 인재가 특정 국가로 쏠리는 '승자 독식'의 반도체 시장 생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의 반도체 자립이라는 꿈은 냉혹한 경제적 수치와 인력 지표 앞에서 좌초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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