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결 찾기·사생활 폭로로 변질
훌륭한 적격자 가로막는 장벽
리더 역량·전문성을 묻는 자리
근본적인 제도개혁 해야 할 때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낙마. 새 정부 출범이나 개각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묻는다. 문제 있는 후보자가 왜 등장하는가. 권력자의 사람 보는 눈의 한계일 수도 있다. 후보자의 권력욕 때문일 수도 있다. ‘인사가 만사’라지만 고위 공직자를 찾는 일은 갈수록 험난하다. 과거 정부의 인사 관련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임자를 발굴하여, 인사동의를 받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존경받는 적임자들이 고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리더로서 경륜을 갖춘 유능한 인재들은 왜 공직의 부름 앞에서 주저하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인사청문회의 무거운 부담이다. 공직 후보자로 지명되는 순간부터 재산과 병역은 물론이고 가족의 사생활과 과거의 행적까지 도마에 오른다. 고위 공직자에게 엄격한 도덕적 검증이 요구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인사청문회는 공직 수행 능력보다는 흠결 찾기와 무차별적인 사생활 폭로로 변질하였다. 청문회가 당사자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인격 살인’의 공포로 다가온다.
고위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무한한 헌신과 책임도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다. 국민이 원하는 유능한 적임자는 굳이 공직을 맡지 않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며 존경받을 수 있다. 장관은 명예롭고 영향력 있는 자리지만, 임기가 불확실하고 정치적 책임은 가혹하리만치 무겁다. 임명권자의 국정 철학과 전문가적 소신이 충돌할 때 겪는 딜레마, 퇴임 이후 정책 결정 과정이 수사나 소송의 표적이 되는 현실은 이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지 26년, 우리는 뼈아픈 역설과 마주하고 있다. 본래 부적격자를 걸러내기 위한 여과 장치가 도리어 훌륭한 적격자들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버렸다. 국민은 유능한 리더와 전문가를 원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후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청문회는 ‘최고로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자리가 아니라, ‘모욕적인 신상 털기를 감수할 맷집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무대로 전락했다. 인사청문회가 인재 선발을 왜곡시키는 역 선택의 덫이 되고 있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소모전을 끝내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올 해법은 없는가. 주요국도 정치적 논쟁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정밀한 사전 검증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도덕성과 정책 검증을 체계적으로 분리하여 소모전을 줄이고 있다. 미국은 후보자를 지명하기 전에 백악관, FBI, 공직자윤리국, 국세청 등이 수개월에 걸쳐 재산, 사생활, 이해충돌 여부를 비공개로 철저히 검증한다.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면 이 단계에서 조용히 걸러진다.
그 결과 TV로 생중계되는 상원 공개 청문회는 국정 철학과 정책 수행 능력을 집중적으로 따지는 생산적 무대가 된다. 인준 거부율이 2% 미만인 이유다. 프랑스 역시 독립 행정기구인 공공생활투명성위원회가 재산 및 이해충돌 여부를 전수 조사하여 사전 평가함으로써 의회 내 폭로전을 차단한다. 영국과 독일도 정당 내부의 1차 검증이나 상임위 정책 점검을 통해 정쟁의 여지를 최소화한다.
한국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질적인 대전환이 시급하다. 개혁의 핵심은 인사 검증 시스템의 개혁에 달려 있다. 우선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을 분리해야 한다. 도덕성 검증을 위한 조사는 청와대, 수사기관, 국세청 등이 해야 한다. 그 자료를 토대로 국회와 대통령이 추천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 기구가 비공개로 철저히 검증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제출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반면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후보자가 해당 부처를 어떻게 이끌고 어떤 비전을 실현할 것인지. 리더로서의 역량과 전문성을 묻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아니면 말고’ 식 폭로를 막기 위해 입증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명백한 허위 사실 유포 시 책임을 묻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도덕적 흠결은 철저히 거르되 훌륭한 인재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리더로서 그 역량을 다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문이 되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낙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유능한 인재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출발점이 되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해야 할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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