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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월요논단] 불안의 양면성

혼란의 시간이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혼란스럽다. 한편에서는 이 땅의 경제적 풍요와 민주주의가 흘러넘치는 듯 환호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일상적 삶의 혼란은 커져만 간다.

[월요논단] 불안의 양면성

교황 요한 23세, 평화 원한다면

‘너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강조

내 변화 없이 ‘민주적 삶’ 불가능

개혁 절실… 일상 전환 ‘시대 요청’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혼란의 시간이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사회 문화적으로도 혼란스럽다. 한편에서는 이 땅의 경제적 풍요와 민주주의가 흘러넘치는 듯 환호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일상적 삶의 혼란은 커져만 간다. 반국가적이며 반민주적이었던 계엄 사태가 해결되고 곧 민주화가 진척될 줄 알았던 시간이 불과 2년 전이었다. 사회적 개혁이 진척되어 일상 삶의 안정을 기대했던 시간이 이렇게나 짧게 혼란에 빠졌다. 계엄을 제압했던 민주정치는 갈 길을 잃고 있지만, 계엄을 옹호하고 지원했던 세력은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 한 사회가 불과 2년 사이에 이렇게 극심한 변동을 겪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 사회는 위선과 모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함께 할 수 없는 두 지향점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한다. 이들이 부딪히고 상충되면서 지금의 혼란을 초래한다. 그러한 분열이 일상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이 분열을 직시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원인은 인지분열에 있으며 그에 따른 혼란이 위기의 실상이다. 민주 사회를 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나 자신의 안락과 풍요는 포기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평등한 사회는 절제와 타협, 균형 없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 이에 대한 이해와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는 나를 제외한 이 사회의 것이라고 생각할 때 혼란과 분열은 깊어진다. 나의 재산과 주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안정시키는 정책에는 반대한다. 겉으로는 민주와 평화를 말하면서 내 이익을 저해하는 정책에는 분노한다. 사회주의적 평등과 인간적 삶을 원한다고 하면서,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다. 주식과 투자를 통한 이익 상승에는 환호하면서, 이를 위한 사회적 환수에는 극도로 인색하다. 개혁을 원하지만, 그것은 나를 뺀 ‘너희들의 변화’여야 한다. 가톨릭교회의 오랜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불가능한 듯 보이던 개혁을 시도한 전임 교황 요한 23세는 평화를 원한다면 ‘너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와 나의 일상이 변하지 않는 사회적 평화와 민주적 삶은 불가능하다. 나의 절제와 문화적 전환 없는 사회적 개혁은 역사 이래 있어 본 적이 없다. 민주 사회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계엄 사태는 거부하면서도, 그 계엄을 옹호한 세력을 내치지 않는 모순을 안고 사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아니란 말인가.

지난 계엄 사태의 실상은 기득권 세력의 사회장악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내부적 특권과 모순적 이해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시도였기에 여전히 이런 세력을 옹호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라. 지방선거 결과도 예외가 아니다. 법조 개혁이 시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사회 문화적 개혁이 절실하며 그를 통한 일상 삶의 전환이 시대적 요청이다. 더 큰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균형 있는 삶이 필요하다. 맹목적이며 모순적인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지 않고서 어떻게 사회적인 평화가 가능할까. 이를 위한 기득권 체제 해체가 개혁의 본질이다. 사회 문화적 전환을 위한 담론과 이해의 전환이 절실하다. 내적 변화와 인식 전환이 시대적 요청이다. 이는 실용이 아니라 지향성의 문제다. 변화와 전환을 위한 담론과 인식을 논의해야 함에도 다만 지난 시대의 논리에 빠져 경제적 풍요가 지속 가능하리라 기대할 때 지금의 혼란은 계속된다.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은 극도로 싫어하면서, 사회적 기득권과 풍요를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과 이해 없이 개혁은 불가능함에도 그를 위한 지성적 실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진국은 없다. 맹목적 자본의 논리와 기술지상주의를 넘어 내면을 성찰해야 한다. 문화적 전환 없이 일상 삶의 안정을 바라는 허위를 벗어나야 한다. 사회적 불안이 아니라 실존적 불안을 직시하면서 이를 극복할 지성이 시대적 요청이다. 개혁은 사회적이면서 실존적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가 절대적 가난과 야만을 벗어나기 위해 외적으로 분투했다면, 지금은 실존적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이해와 실천을 기울여야할 때가 되었다. 인간 지성의 본연적 과제를 외면한다면 혼란과 위기는 지속될 뿐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명예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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