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위권 경제규모 갖춘 한국
메달로 국가 위상 증명시대 지나
여론조사 32.6% ‘전면폐지’ 응답
선수 땀 존중해도 의무예외 별개
임병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
병역특례 폐지는 공정사회로 가는 출발점이다. 2026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일부 선수들의 경솔한 언행이 도화선이 됐지만, 본질은 다른 데 있다. 금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병역 의무를 면제하는 게 과연 시대 흐름과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다.
때마다 되풀이된 논란을 이번에는 제도 개혁으로 끝내야 한다.
스포츠 병역특례의 뿌리는 냉전 시대에서 비롯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한국은 북한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당시는 국제대회 성적이 국가 위상과 체제 경쟁의 우열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고 국제대회 입상을 국가적 과제로 삼았다.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을 병역 혜택과 결합한 발상은 그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나왔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갖췄다. 국제대회 메달 수로 국가의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수들의 땀과 성취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성취가 병역 의무에서 예외를 정당화하는지는 별개다.
스포츠에서 성과를 국가의 영광으로 포장해 개인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는 설득력을 잃었다.
무엇보다 공정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종목과 대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국제대회가 드물거나 메달 경쟁이 치열한 종목은 여간해선 혜택을 받기 어렵다.
반면 일부 종목은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에서 병역특례를 받을 수도 있다. 예술·체육 분야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왜 다른 청년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가.
프로 선수, 특히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에게 혜택이 돌아갈 때 논란은 더욱 크다. 선수 개인은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성취를 얻는다.
국위선양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그 성과가 선수 개인에게만 집중된다면 사회정의와도 어긋난다. 국가대표로 뛰었다는 사실만으로 병역 의무를 달리 적용하는 것은 보편적 의무와 특별한 보상 사이 경계를 흐리게 한다.
병역자원이 줄어드는 현실도 심각한 문제다. 국군 상비 병력은 2012년 63만9천명에서 2022년 50만 명으로 급감했다. 20세 남성 인구 역시 2015년 37만2천명에서 2025년 22만5천명으로 줄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할 청년은 갈수록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국가주의적 명분에서 도입한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더 이상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봉사활동을 통한 대체복무가 제시되기도 하지만 현실성 없다. 병역특례 기준을 복잡하게 바꾼다면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 봉사활동이 병역 의무의 본질을 대신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제도 명칭과 계산법을 바꾸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특혜 제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홍수환은 현역으로 복무하면서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물론 모든 선수에게 같은 조건을 적용할 수는 없다.
훈련 환경과 선수 생애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대표 훈련과 경기 출전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다. 병역 의무 자체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41.1%는 대상과 기준 축소를, 32.6%는 전면 폐지를 지지했다. 현행 유지는 21.5%에 그쳤다. 조사 결과만으로 정책의 정당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가 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병역특례는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다. 과거 당위성은 생명을 다했다. 메달의 가치는 병역 면제가 없어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보다 모든 청년에게 공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일이 더 중요한 시대다. 성취는 지원하되 예외는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공정한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다. 병역특례 축소를 넘어 폐지를 진지하게 추진할 때다.
/임병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위원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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