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월가 흔든 ‘테라노스 악녀’의 그 사진, 손에 든 건 ‘가짜피’였다

“무언가를 바꾸려 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처음엔 미쳤다고 하고, 그다음엔 맞서 싸우고,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을 바꾸게 되죠.”

2014년 7월. 당시 테라노스 대표였던 엘리자베스 홈즈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본사에서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무언가를 바꾸려 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처음엔 미쳤다고 하고, 그다음엔 맞서 싸우고,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을 바꾸게 되죠.”

유죄가 인정된 투자자 사기 금액만 1억4400만 달러(약 1925억 원)가 넘는 실리콘밸리 ‘희대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42)가 2015년 10월 미국 CNBC에 출연해 한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테라노스의 혈액검사 기술에 의문을 제기한 보도를 내놓은 직후였다. 몰락의 시작이었다.

사기의 중심에는 피 몇 방울이 들어가는 작은 채혈 용기가 있었다. 2014년 홈즈가 이 용기를 얼굴 앞에 들고 찍은 사진은 이후 실리콘밸리 사기극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27일 사진작가 에단 파인스(Ethan Pines)는 자신의 SNS에 2014년 찍은 홈즈의 사진 전부를 편집 없이 올렸다. 파인스는 “정말 다가가기 편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 피 몇 방울로 240가지 검사 내세운 테라노스의 몰락

인스타그램 에단 파인스 갈무리

테라노스는 피 몇 방울로 수백 가지 의료·진단 검사를 할 수 있다고 내세운 헬스케어 기업이다.

사진에서 홈즈가 든 용기는 테라노스가 ‘나노테이너(nanotainer)’라고 부른 소형 채혈 용기다. 피 몇 방울만 뽑으면 240가지 의료 검사가 가능하다는 이른바 ‘기적의 기술’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WSJ 보도 이후 테라노스는 급속도로 무너졌다. WSJ는 테라노스 전직 직원을 인용해 “검사 240가지 가운데 자체 장비로 돌리는 검사는 15가지뿐”이라고 폭로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나노테이너를 승인받지 않은 의료기기로 판단했으며, 이듬해 포브스는 홈즈의 순자산 추정치를 0으로 고쳤다.

결국 홈즈는 2022년 투자자 사기 혐의로 징역 11년 3개월을 선고받고 2023년 5월 교도소에 들어갔다.

● ‘가짜 피’ 담은 용기 들고 두 시간 카메라 앞에 선 홈즈

인스타그램 에단 파인스 갈무리

사진작가 파인스는 투자가 한참 진행 중이던 2014년 테라노스 사무실에서 홈즈를 촬영했다.

파인스는 당시 사무실이 여느 실리콘밸리 기업과 다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벽에는 홈즈의 초상화가 있었고, 다소 정돈되지 않은 모습도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처음 대면한 홈즈를 두고 파인스는 “겸손하고 눈을 자주 맞췄다”며 “거만하거나 딱딱한 인상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고 덧붙였다.

수상한 점은 사무실에 ‘가짜 피’가 있었다는 점이다. 촬영이 절반쯤 지나 그가 혈액 샘플을 쓸 수 있는지 묻자 홈즈는 가짜 피를 채운 나노테이너 몇 개를 내놨다. “진짜 혈액은 무균 상태와 온도를 유지해야 해 들 수 없다”는 이유였다.

테라노스(Theranos) CEO 엘리자베스 홈즈가 가짜 피가 든 ‘나노테이너’를 들고 서 있다. 2014년 사진작가 에단 파인스가 촬영. 인스타그램 에단 파인스 갈무리

홈즈는 자연스럽게 나노테이너를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댔고, 파인스는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이 사진이 탄생했다.

사진을 보면 홈즈는 무심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검은 터틀넥과 재킷, 다소 헝클어진 머리 모양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파인스는 당시 사진 220장을 찍었고, 그중 52장이 나노테이너를 든 사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CEO 촬영은 보통 10~20분이지만, 홈즈는 두 시간 넘게 카메라 앞에 섰다”고 말했다.

파인스는 비즈니스인사이더(BI)에 “촬영하다 보면 ‘이건 선물이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며 “커다란 눈에 친밀하면서도 묘한 표정까지 더해지니 뭔가 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