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인왕제색도 Four seasons-Drawing of colors for In wang mountain. 이미지 빙하미술관
원주 빙하미술관이 4월 18일부터 개최하는 이이남 개인전 《재생 중인 기억 On Repeat; Memory》은 기억 속에 겹겹이 축적된 시간들이 반복되고 재생되는 순간에 주목하며, 고전 회화와 디지털 영상을 결합해 서로 다른 시간의 장면들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교차하는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이남은 정지된 회화를 움직이는 이미지로 확장하며, 과거의 풍경을 현재의 감각 속에서 다시 경험하게 한다. 과거의 이미지와 현재의 시선, 반복과 흐름으로서의 시간을 교차하며, 중첩된 시간의 층위를 하나의 장면으로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과거의 이미지가 오늘의 감각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새롭게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신-단발령망금강(New-DanbalryeongMangeumgang), 2017, LED TV, 싱글채널비디오, 컬러, 사운드 6min. 이미지 빙하미술관
이번 전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시간과 기억의 중첩이 어떻게 구현되고 확장되는지를 탐색한다. 정지된 회화가 움직임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기억 역시 고정된 대상이 아닌, 지속적으로 재생되고 갱신되는 상태로 제시된다. 관람자는 반복되고 재구성되는 이미지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맞물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전시는 커튼을 지나며 시작되는 공간적 전환을 통해 관람자를 시간의 흐름 안으로 이끈다. 대표작 ‘기운생동 87마리 새’에서는 정적인 회화 이미지에 움직임이 더해지며 ‘살아있는 이미지’의 감각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공간의 <고향의 봄>에서는 달빛과 물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서정적 풍경이 펼쳐지며, 관람자는 단순한 이동이 아닌 시간 속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87마리 새. 이미지 빙하미술관
전시의 중심부에서는 〈인왕제색도〉, 〈신-단발령망금강〉, 〈황묘농접도〉, 〈맹호도〉 등 전통 회화를 기반으로 한 작업이 현대적 풍경과 결합되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을 형성한다. 특히, 〈인왕제색도-사계〉는 겸재 정선의 산수를 디지털 매체로 재해석해 사계절의 순환을 통해 시간성과 움직임을 부여하고, 정지된 산수에 새로운 생동감을 더한다.
〈신-단발령망금강〉을 참조한 작업은 정선이 바라보았던 금강산의 풍경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사유한다. 개발로 변화한 환경과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며,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자연의 기억과 현대의 도시 풍경이 교차하는 장면을 제시한다. 두 작업은 고전 산수가 지닌 이상적 풍경과 동시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전통 회화를 현재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한다.
이어지는 인터랙티브 작업 〈미래의 산수〉에서는 레이어드된 샤 스크린과 레이저, 안개, 미러 오브제, LED 월이 결합된 미래형 공간이 펼쳐진다. 관람자는 공간 속을 이동하며 ‘산수’ 개념을 풍경의 재현이 아닌 사유의 장으로 경험하게 된다. 레이저를 매개로 형성되는 공간적 풍경은 전통 산수 개념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확장한다.
맹호도. 이미지 빙하미술관
전시 후반부에서는 고전 이미지를 팝아트적 감각으로 변형한 작업과 도시적 공간 연출이 등장하며 동시대 소비사회와 일상의 감각을 환기한다. 전통 이미지가 현대적 시각 언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관람자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동시대적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를 마친 뒤 이어지는 워크숍 공간으로 향하는 통로에서는 지하철이 연상되는 공간 연출이 펼쳐지며, 시간 여행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감각을 경험하도록 구성하였다. 더 나가면 빙하 카페에서는 AI 기술로 재편집한 오드리 헵번의 영화 장면이 현재의 시점으로 재구성되어 상영되며, 전시의 이미지와 시간의 개념이 미술관 전체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는 전시가 특정 전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공간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경험으로 작동하도록 한다.
황묘농접도. 이미지 빙하미술관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장면과 리듬을 따라 이어지는 다층적 공간 구조로 구성되었다. 관람객은 이동 과정에서 이미지의 반복과 변형을 경험하며, 하나의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감각적으로 축적되는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게 된다.
《재생중인 기억 On Repeat; Memory》는 고전 회화와 디지털 미디어의 결합을 통해 시간, 기억, 그리고 이미지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사유하도록 제안하는 전시이다.
김수현 아트아셀컴퍼니 대표는 ‘전시 서문’에서 이번 전시를 이렇게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기술적 매체의 진보를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새로운 시간성을 획득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디지털 이미지가 반복되고 순환되는 구조 속에서 기억은 선형적 시간에서 벗어나 층위화되고, 관람자는 작품을 감상하는 위치를 넘어 시간의 흐름 속을 이동하는 존재가 된다.
전시는 하나의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경험의 연속으로 구성된다. 공간을 따라 이어지는 장면들은 명확한 시작과 끝을 갖지 않으며, 서로 다른 시간의 단편들이 감각적으로 축적된다. 관람객은 특정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이미지와 환경 사이를 이동하며,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 그 자체를 체험하게 된다.
고전 회화는 이 전시에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생되는 살아 있는 이미지로 존재한다. 디지털 기술은 이미지를 미래로 이동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다시 열어 보이게 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이때 전시는 하나의 전시 공간을 넘어, 관람 이후에도 지속되는 시간 경험으로 확장된다.
《재생중인 기억》은 이미지가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지가 시간을 생성한다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빙하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바라보고,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사유하고자 한다.”
산장고일도 Mountain Villa and Lofty Recluse (山莊高逸圖). 이미지 빙하미술관
이이남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조선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자연의 현상과 삶의 감각을 담아낸 고전 회화를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하며, 정지된 이미지에 새로운 시간성과 생동감을 부여하는 작업을 한다. 고전 속 인물과 풍경은 화면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거나 변형되며, 서로 다른 시대의 이미지가 하나의 장면 안에서 교차한다.
디지털로 재탄생한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재, 기술과 인간, 예술과 대중 사이를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는 지점을 새롭게 구성한다. 이이남은 예술이 감상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경험으로 확장되며, 대중과의 소통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벨기에, 중국, 독일, 카타르, 뉴욕, 싱가포르, 파리, 런던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활동해왔으며, 2016년 부산 비엔날레에서는 Google의 VR 틸트 브러시(Tilt Brush)를 활용한 협업 전시를 선보였다.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전시를 진행했다.
만화-병풍(Cartoon-folding screen), 2018, 12min 7sec 5XLED TV. 이미지 빙하미술관
2018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디지털 병풍 「평화의 길목」을 선보이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예술의 공공적 역할을 확장했다. 2019년에는 테이트 모던에서 초빙 전시를 진행하였다.
작가는 <5분의 미학>, <뿌리들의 일어섬> 등 주요 연작을 통해 동아시아적 생명관과 창작의 근원을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인천국제공항, 벨기에 지브라스트라트 미술관, 국립중앙도서관, UN 본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중국 수닝예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호퍼 '밤샘하는사람들', 붓터치. 이미지 빙하미술관
이이남 개인전 《재생 중인 기억 On Repeat; Memory》는 원주 빙하미술관(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구재로 66)에서 4월 18일부터 10월 25일까지 열린다.
이이남 개인전 "재생 중인 기억 On Repeat Memory" 포스터. 이미지 빙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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