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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울산 현대사 - 사카린 밀수 사건

1966년 여름, 울산은 뜨거웠다. 공업도시로 발돋움하던 때,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고 국가 경제 개발의 상징인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불안과 균열이 싹트고 있었다. 그 균열을 포착해 세상 밖으로 끌어낸 사람은 지역 언론인이었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1966년 여름, 울산은 뜨거웠다. 공업도시로 발돋움하던 때,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고 국가 경제 개발의 상징인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불안과 균열이 싹트고 있었다. 그 균열을 포착해 세상 밖으로 끌어낸 사람은 지역 언론인이었다. 그는 1971년 4.27 대통령 선거 당시 울산의 개표 부정을 폭로, 관권 개입과 금력의 매수를 뿌리치고 특종 보도한 경향신문 울산 주재 한종오 기자였다. 1966년 5월에도 그는 한국비료 공장을 둘러싼 수상한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사건의 실마리는 이랬다. 한 기자가 울산 세관 창고에 통관되지 않은 물자들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취재를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공장 시운전에 필요한 합성수지였지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첫째 물량이 지나치게 많았고, 둘째 일부는 이미 시중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포착되었다. 도난 사건으로 시작된 작은 소동은 곧 더 큰 의혹으로 번져갔다. 누군가 훔쳐낸 물건을 쫓던 경찰이 오히려 더 큰 흐름을 건드린 셈이었다.

한 기자는 이를 단순한 절도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세관과 경찰, 그리고 한국비료 사이의 미묘한 태도를 읽어냈다.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직감으로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며 퍼즐을 맞춰 나갔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당시 언론 환경은 절대 자유롭지 않았고, 특히 대기업과 정권이 얽힌 사안은 더더욱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진실은 천천히, 그리고 집요한 취재 앞에 서서히 실체를 드러냈다.

결정적인 단서는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한국비료가 들여온 물품 가운데 일부가 '건설 자재'로 신고되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카린 원료였다. 설탕 대용으로 쓰이던 이 물질은 당시 국내에서 엄격히 관리되던 수입 품목으로 대량 밀수입했다는 것은 단순한 법 위반을 넘어선 대형 사건이었다. 한국비료는 일본의 미쓰이물산에서 사카린 원료를 들여왔고, 그것을 공장 건설 자재로 위장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거래의 대금이 공장 건설을 위한 차관 자금으로 결제되었다는 점인데 국가가 승인한 외화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었다. 외자도입 관련법 위반에다 업무상 배임죄까지 범했다. 일부 물량은 이미 국내 업체에 판매된 상태였다.

사카린밀수 사건을 보도한 경향신문(1966년 9월 15일자). 김잠출 제공

부산 세관이 일부 물량을 압수하고 벌금을 부과할 때까지는 사건은 조용히 덮이는 듯했다. 그러나 기자의 취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이 단순히 현장에서 끝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울산에서 시작된 이 의혹은 결국 서울로, 그리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경향신문은 1966년 9월 15일 1면과 사회면, 사설까지 동원해 '사카린 밀수' 기사를 보도했다. 경남일보가 5월 22일 이미 최초로 보도한 지 4개월 뒤였지만 전국지의 영향은 컸다. 경향의 보도로 사카린 밀수사건은 전국 최대 이슈가 되었고 사건 축소 의혹이 불거지자, 대통령이 재수사를 지시했다. 이로인해 공무원들과 이병철 회장의 아들이 구속됐다. 이 회장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했다. 이와 관련해, 김두한의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이 일어났고 국무위원 총사퇴가 이어지기도 했다. 경향신문이 "재벌이 비료 공장 짓는다고 해놓고 뒤로는 밀수해서 폭리를 취했다!"라며 대서특필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들었던 국민의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 이 기사는 단순한 특종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권력과 자본이 결탁해 진실을 가릴 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현장을 지키는 기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지역 언론이 흔들리는 시대다. 매체는 넘쳐나지만, 독자는 줄고 광고는 마르고 현장의 진실을 끈질기게 파헤치는 기자도 드물다. 그 공백은 단순한 정보의 공백에 그치지 않는다. 감시의 공백, 기록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1966년의 울산 현대사의 기록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향수나 과거 회상 때문이 아니다. 불편한 진실을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지역 기자의 언론 정신과 끈질긴 취재, 거짓을 걷어내는 참 용기가 지금도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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