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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외골수 기질’이 ‘야망’에 휘둘리면 [강준만 칼럼]

당신은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야망을 예찬하시라. 남들에게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반면 ‘야망 비판’은 인기가 없다. 성공한 사람에 대한 시기나 질투로 여겨질 수도 있다.

야망에 휘둘린 외골수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반대편에 있던 극우 세력에 아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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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당신은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야망을 예찬하시라. 남들에게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반면 ‘야망 비판’은 인기가 없다. 성공한 사람에 대한 시기나 질투로 여겨질 수도 있다. 삶의 밑바닥에서 야망 하나로 떨쳐일어나 정상에까지 오른 ‘개천에서 난 용’ 스토리가 시공을 초월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가끔 꿈을 꾸며 사는 우리는 야망의 실현에 대해 냉정할 수 없다. 언제건 열광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바로 그런 ‘시장 논리’ 때문에 야망의 가치는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되었으며, 그 위험과 해악은 과소평가되었다.

야망을 가진 사람의 사전엔 ‘포기’가 없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선동이 미친 영향이 크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했고,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패배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에 포기를 비난하는 자기계발 서적들이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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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마라 한 번뿐인 인생이다’. ‘꿈!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포기하지 말자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포기하지마, 1%의 가능성만 있다면’. ‘꿈꾸는 자는 절망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괜찮아, 좌절하고 방황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포기하지 마! 넌 최고가 될 거야’. ‘포기하는자 머슴으로 살고 도전하는자 주인으로 산다’.

오해 없기 바란다. 이 책들은 다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포기하는 게 필요하거나 좋을 때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 이젠 포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정도의 ‘숨 쉴 틈’은 인정하자는 말을 하려는 것뿐이다. 특히 정치에서 그렇다. 한국 정치판에서 야망이 없어 망한 사람은 없지만, 야망 때문에 망한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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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왜 저러지?” 우리는 정치판을 지켜보다가 가끔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간 지켜온 자신의 정치적 노선이나 주장에 역행하거나 이전과 비교해 일관성이 없는 언행을 하는 정치인을 향해 던지는 말이다. 물론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명분으로 그런 변신을 한다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그런 이해가 어려울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야망’과 ‘기회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 사람에게 ‘외골수 기질’이 있다면 그 기질이 그런 단어들과 어울리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외골수 기질’은 그 자체로선 좋거나 나쁘다는 식의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연구자나 장인에겐 외골수 기질이 축복일 수 있지만, 정치인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외골수의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단 한곳으로만 파고들기 때문에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자신과 좀 떨어진 곳에서 더 나아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선 비교적 둔감하다. 여론에 민감해야 할 정치인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외골수는 늘 그래왔듯이 자기 확신과 자기애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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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며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외골수에게 기회주의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기회주의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기회주의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행동에 대한 두려움을 ‘객관적’ 사실, 법칙, 규범이라는 보호막으로 가리는 그릇된 태도를 가리켜 기회주의라고 했는데,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외골수에게 기회주의라는 말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럼에도 외골수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덫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야망이다. 외골수 기질이 야망에 휘둘리면 가치관과 신념은 원하는 밥그릇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액체가 되고 만다. 프랑스 철학자 장 드 라브뤼예르는 “노예에게는 주인이 한명뿐이지만 야망을 품은 사람에게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했다. 야망에 휘둘린 외골수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반대편에 있던 극우 세력에 아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걸 추하다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외골수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그가 아부하는 대상은 소수일망정 열정이 워낙 강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조직을 광란의 수렁으로 몰아가면서 정치를 망가뜨리지만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아무려면 ‘불법 계엄질’이라는 광란의 폐해보다야 더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광란은 우리를 두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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