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이 지역 창업 생태계의 첫 관문 역할을 본격적으로 떠안기 시작했다.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을 지나 시장 검증과 초기 고객 확보, 해외 진출까지 한 번에 풀어내는 입구로 자리잡으면서다. 이번 와디즈의 동남권 운영 기관 선정은 부울경 지역 창업가들이 서울 중심의 기존 창업 인프라에 종속되지 않고 자체 채널만으로 시장 진입과 글로벌 확장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와디즈(대표 신혜성)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의 로컬 트랙 동남권 운영 기관으로 선정됐다고 30일 밝혔다.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의 예비 창업가들이 펀딩을 거쳐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축은 펀딩으로 시작하는 창업이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먼저 노출하고, 서포터의 반응으로 초기 수요를 가늠하면서 자금과 고객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식이다. 주문이 확정된 뒤 생산에 들어갈 수 있어 재고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고, 자본 여력이 부족한 초기 창업가에게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정부 창업 지원 사업이 교육과 멘토링, 사무공간 제공에 무게를 두는 것과 차별화되는 지점도 분명하다. 와디즈는 수혜기업이 실제로 펀딩을 진행해볼 수 있는 펀딩 연계형 특화 트랙을 운영한다. 9만 건 이상의 펀딩 프로젝트를 거치며 축적해온 노하우를 창업가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구조다.
해외 시장 연결고리도 함께 가동된다. 와디즈는 지난해 5월 글로벌 서비스를 론칭한 뒤 117개국에서 가입자를 확보했고 40여 개국에서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동남권 로컬 창업가들이 국내 펀딩에서 검증을 마친 뒤 곧바로 해외 서포터와 연결될 수 있는 채널이 마련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지역 창업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로 읽고 있다. 부산과 울산, 경남은 제조 기반이 탄탄한 반면 초기 자금 조달과 시장 진입 채널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와디즈가 운영 기관으로 들어오면서 지역 창업가들은 기획 단계부터 펀딩, 글로벌 진출에 이르는 과정을 한 플랫폼 안에서 시도해볼 수 있게 됐다. 비슷한 시기 텀블벅과 오마이컴퍼니 등 다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도 지역 사업과 결합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남권을 선점한 와디즈의 행보는 로컬 트랙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이번 선정은 와디즈의 사업 모델이 정부의 창업 정책 설계 방향과 맞물리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크라우드펀딩은 콘텐츠와 굿즈 중심의 소규모 프로젝트 채널로 인식되는 경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중기부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의 로컬 트랙 운영을 펀딩 플랫폼에 맡겼다는 사실은 펀딩이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라 창업의 주된 진입 경로로 정책 영역에서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9만 건이 넘는 누적 프로젝트와 글로벌 결제 트랙이라는 인프라가 정부 사업의 운영 자격으로 환산된 첫 번째 사례에 가깝다.
데이터 측면의 가치도 가볍지 않다. 와디즈가 보유한 펀딩 데이터는 어떤 카테고리에서 어떤 가격대의 어떤 메시지가 서포터의 지갑을 여는지에 대한 실거래 기반의 시장 신호다. 동남권 창업가들은 이 데이터의 가공된 결과물을 멘토링과 컨설팅 형태로 받아들고 자신의 제품을 출시 전부터 다듬을 수 있게 된다. 일반 창업 교육이 사례 중심의 일반론에 머무는 데 비해 펀딩 연계형 특화 트랙은 실제 수요와 결제로 검증되는 학습이라는 점에서 효율의 격차가 크다. 한 창업 지원기관 관계자는 "지역 창업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시장이 진짜로 원하는 제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빨리 얻는 일"이라며 "펀딩은 그 답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구"라고 평가했다.
지역 산업 구조와의 정합성도 이번 선정의 무게를 키우는 요소다. 부산과 울산, 경남은 조선과 자동차, 기계, 화학 같은 중후장대 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청년 창업가들의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반면 동남권에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디자인 산업, 식품과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강소기업이 두텁게 분포해 있어 소비재 펀딩과의 궁합이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와디즈가 강점을 보여온 라이프스타일과 푸드, 패션, 테크 가전 카테고리는 동남권의 제조 역량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지역의 제조 인프라가 펀딩 데이터와 결합할 경우 기획에서 양산까지의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D2C 브랜드들이 동남권에서 빠르게 등장할 가능성이 열린다.
해외 진출 채널의 확보는 그동안 지역 창업가들이 가장 갈증을 느껴온 영역이다. 그동안 부울경 창업가들은 KOTRA나 지자체 주관의 해외 박람회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해왔지만 비용 부담이 크고 성과 측정도 쉽지 않았다. 와디즈가 117개국 가입자와 40여 개국 결제 인프라를 동남권 창업가에게 직접 연결하는 구조는 박람회 한 차례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글로벌 수요를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글로벌 서포터의 결제가 곧 시장 검증의 결과물로 환산되는 만큼, 후속 투자 유치 과정에서도 객관적 자료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
플랫폼 경쟁 구도에서 보면 와디즈의 동남권 선점은 로컬 트랙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는 결정적 발판이 될 수 있다. 텀블벅이 콘텐츠와 출판, 디자인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오마이컴퍼니가 사회적 가치 영역에 집중하는 가운데, 와디즈는 정부 사업과 연계된 지역 창업 지원이라는 새로운 트랙을 자기 영역으로 가져왔다.
동남권에서의 운영 성과가 다른 권역으로 확장될 경우 와디즈는 단순한 펀딩 플랫폼을 지나 지역 창업 인프라의 표준 운영자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와디즈임팩트라는 임팩트 투자 계열사 구조 역시 펀딩 이후 단계의 자금 연결까지 한 번에 풀어낼 수 있는 패키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사와의 차별점으로 꼽힌다.
사진=와디즈
다만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펀딩 성공률이 모든 카테고리에서 균일하지 않은 만큼 동남권 창업가들의 아이템이 펀딩 친화적인 영역에 어느 정도 분포해 있는지가 사업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또한 펀딩 이후의 양산과 배송, 사후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분쟁 사례가 누적되고 있는 점도 운영 기관으로서 와디즈가 함께 관리해야 할 영역이다. 지역 창업가들이 첫 펀딩에서 실패할 경우 빠르게 재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사업의 실효성을 좌우하게 된다.
최동철 와디즈임팩트 대표는 "와디즈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는지 확인하고, 이를 창업 실행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 '모두의 펀딩' 플랫폼"이라며 "동남권 창업가들이 펀딩을 통해 시장에 안착하고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후속 일정도 확정됐다. 와디즈는 5월 12일 오후 3시 부산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크라우드펀딩 동남권 설명회를 연다.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의 예비 창업자와 초기 창업자가 대상이다. 설명회에서는 펀딩 절차와 성공 전략 안내가 진행되고, 와디즈 프로젝트 디렉터와의 1대1 맞춤형 컨설팅, 초보자를 위한 펀딩 가이드북도 함께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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